[중부시론] 최용현 변호사·공증인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자유한국당 경제파탄대책특별위원회 주최 '토지공개념 개헌 무엇이 문제인가?'토론회에서 홍준표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18.04.04. / 뉴시스

보수주의를 하나의 정치이념이라고 하는 것에 회의적인 정치학자들도 많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고픈 것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 심성 중에 하나에 불과하고, 보수가 보존하고자 하는 전통이나 질서는 변혁 요구자들의 주장 내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 이러한 난점은 더욱 커졌다. 어떤 보수는 친시장적·무종교적인 반면 어떤 보수는 지독히 국가주의적·종교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은 이토록 다종다양한 보수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일관된 관념이 있다고 한다. 바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정치권력적 위계질서에 대한 숭배다. 전통·종교와 도덕·사회내 자율·엘리트 정치·국가권위·시장 등 주장하는 분야와 거기에서의 태도는 다르지만, 보수는 기본적으로 그 내부에서의 불평등과 위계를 옹호한다는 것이다. 기실 노동자·빈민·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천시, 사회민주적 개혁에 대한 적대, 이질적인 소수자에 대한 혐오, 권력자나 강대국에 대한 숭배 등은 모든 보수들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왜?'(원제는 The Reactionary Mind, Conservatism from Edmund Burke to Sarah Palin)의 저자인 코리 로빈(Corey Robin)은 보수주의 원조인 버크부터 최근 정치인까지 300여년간 있었던 여러 보수 사상가·정치인·선동가들을 추적하여, 이들의 관대함·장엄함·신중함의 이미지는 거짓이고 그 속내는 속물근성·조잡함·폭력성으로 가득찼다는 사실을 규명한다. 최근에 보수주의는 전세계적으로 극우주의·인종차별·종교적 근본주의와 같은 악덕의 정치흐름과 연결되어 우려를 사고 있다. 이러한 보수의 위험스런 심성과 경향은 앞서 말한 그들의 반평등적이고 반민주적 정치신념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보수주의가 얼마나 속물적이고 조잡할 수 있는가, 얼마나 반평등적이고 반민주적일 수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구태여 보수 역사를 공부하거나 로빈의 책을 찾아 읽을 필요가 없다. 이는 매일 방송과 신문을 통하여 목격하는 우리 보수들의 일상이다. 아마도 그 최정점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있을 것이다. 홍 대표의 막말과 억지, 궤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독선적인 당 운영과 국민들 정치의식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정치인식까지 더해지면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홍 대표가 입을 열 때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지방선거 후보자들을 가슴을 조아리고, 오히려 반대편 사람들은 내심 기대하며 다시 그의 입을 주목할 정도다.

최장집 교수는 '자유주의는 보수세력에 의해 오염되고 운동세력에 의해 버림받았다'고 말하는데, 되돌아보면 우리의 보수주의 또한 자유주의와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우리 역사에서 '건강한 보수'는 사실상 형용모순에 가까웠다. 4.19혁명, 87년 민주화, 그 이후의 민주개혁정부등장 등 보수가 변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지만, 보수는 건강한 양질의 보수로 거듭나기는커녕 오히려 과거로 퇴행했다. 지난 촛불과 탄핵도 대한민국 보수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이자 변화를 위한 중대한 기회였다. 그러나 지금의 보수는 국정농단의 동조자 혹은 방조자로서의 책임의식도 없고, 건강한 보수를 정립하기 위한 쇄신의지도 없고, 새로운 보수가 지향해야할 가치나 정책에 대한 고민과 노력도 없다. 오히려 홍 대표는 촛불 시민을 폄훼하고 국정 농단자를 엄벌하는 수사와 재판을 조롱하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대한민국 보수는 속물근성·조잡함·개혁에 대한 무지와 무능력·날것 그대로의 권력욕·퇴행적 정치인식으로 범벅된 홍 대표에게 끌려가고 있을 뿐이다.

최용현 변호사·공증인

정치와 사회발전은 일견 진보가 이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보수가 추급(追及)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 보다 경험에 부합된다. 사회의 다수인 보수 혹은 모든 시민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보수적인 인식·정서·행태가 나아지는 것만큼 사회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점에서 건강한 양질의 보수가 없는 사회는 그런 진보가 없는 사회만큼 위험하다. 보수의 본산임을 자부하는 자유한국당이 변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보수는 촛불과 탄핵이전으로 퇴행할 뿐이고, 그만큼 우리의 정치발전은 지체될 것이다. 홍준표 대표, 그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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