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내 주머니 속에 송곳이 있다. 송곳은 뾰족하기 때문에 몸을 이곳저곳 찌르기도 하고 옷 밖으로 삐져나오기도 한다. 송곳을 주머니에 넣은 내가 아닌 송곳이 그렇게 했다. 내가 주머니에 송곳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 아니고 송곳 스스로가 드러난 셈이다.

중국 전(戰)국시대 말기, 조(趙) 나라는 진(秦) 나라 침략으로 백척간두에 섰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에 조는 이웃 초(楚) 나라에 구원병을 청해야만 했다. 재상 평원군이 총대를 맺다. 식객(食客) 중 20명을 골라 함께 가기로 했다. 한 명이 부족했다.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동행을 청했다. 평원군은 '주머니 속의 송곳은 그 끝이 밖으로 나타나듯 당신이 인물이면 드러나는 법이오. 그대는 내 집서 3년이나 있었지만 이야기를 듣지 못했소. 남다른 재주가 없다는 뜻이니 아니 되오.'라며 거절했다. '저를 일찍 주머니에 넣어 주셨다면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와 그 끝뿐만 아니라 자루까지 드러났을 것입니다.'라며 모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그는 초나라에 가 나라를 구하는 큰일을 했다.

'낭중지추(囊中之錐)'가 유래됐다. '주머니 낭(囊), 송곳 추(錐).' 주머니에 들어 있는 송곳은 아무리 감추어도 끝이 뾰족해 밖으로 튀어나오듯, '뛰어난 사람은 많은 사람 가운데 섞여 있어도 두각을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말이다.

"벽오동(碧梧桐) 심은 뜻은 봉황(鳳凰)을 보려 터니, 내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 일편명월만 빈 가지에 걸렸어라. " 벽오동을 심은 뜻은 분명 봉황을 보려 함이었다. 대신 가지에 걸린 조각달만 보았다는 얘기다. 봉황은 죽순이나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아침 이슬이 아니면 마시지 않고, 대나무 가지가 아니면 앉지 않는 고상함의 본색이다. 봉황은 걸출하고 고귀한 인재를 일컫는다. 이런 봉황은 오지 않고 조각달, 잡새가 날아들었다. 시끄럽게 울어대고 똥도 마구 싸댄다. 적반하장 스스로 봉황이라고 우긴다. 개밥 속에 있는 도토리가 '주머니 속의 송곳'으로 우긴다. 개는 밥그릇 안의 도토리를 절대 먹지 않는다. 도토리만 남는다. 어떤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일종의 왕따다. 이 왕따 도토리들이 자주 키 재기를 한다. 도토리가 크기 차이가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더 뛰어나다며 우열을 가리려고 서로 다툰다. 한마디로 꼴값 떠는 형상이다. 개가 먹지 않고 버린 개밥의 도토리들이 키 재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주머니 속의 송곳'으로 위장하고 조작해 나서는 군상(群像)이 '개밥 속에서 키 재기하는 도토리'와 벽오동에 날아든 잡새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신만이 최적이고 만인지상이라며 스스로 나서는 인간들이다. 롤 모델(Role Model)을 자처한다. '주머니 속 송곳'으로 말이다. 송곳은 구멍을 내는 도구다. 구멍이 뚫리면 흐름이 생긴다. 바로 소통이다. 송곳은 소통을 이끌어내는 비유물인 셈이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 스스로 드러나듯 걸출(傑出)도 언제 어디서라도 드러나 큰일을 한다. 모수는 주머니 속에서 송곳처럼 스스로 드러남에 손색이 없었다. 경색된 국면을 소통시켜 큰일을 했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모수는 스스로 추천했다[毛遂自薦]. 어찌 보면 스스로 잘 낫다고 나선 셈이다. 아니다. 모수는 평소 실력을 갈고닦아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때가 왔고 평원군이 그때를 챙겨주었다. 스스로 추천한 것이 가상(嘉尙)해 평원군이 모수를 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강상(姜尙:강태공)이 할 일이 없어 낚시하지 않았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하면서 말이다. 때를 기다렸던 낚시였다. 주 제후국 문왕의 스승이 되었고 무왕을 도와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 건국에 공헌했다. 제갈량 역시 큰일을 위해 멋대로 나서지 않았다. 실력부터 쌓았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 삼고초려(三顧草廬)가 그 증거다. '와룡(臥龍:앞으로 큰일을 할 사람을 비유)'이라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통(龐統)도 봉황의 새끼, 봉추(鳳雛: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훌륭한 인재)라 불렸다. 스스로 '잘 낫다'며 드러내지 않았다. 모두 유비에게 선택되어 각각 정치가와 모사(謀士)가 되었다. 잡새와 도토리들아, 함부로 나서지 마라. 벽오동은 잡새를, 개는 도토리를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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