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최시선 수필가

전남 목포신항만에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와 직립 용역업체인 현대삼호중공업이 세월호를 부두 안벽 쪽으로 옮기는 평행이동 작업을 벌인 21일 오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거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2018.02.21. / 뉴시스

아, 세월호가 눈앞에 있다. 옆으로 뉘여 있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수없이 봐 왔던 그 세월호다. 이를 어찌 필설로 말하랴. 부끄러움의 표상이요 슬픔의 극치다. 독한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배는 기울고 물은 차오르는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발버둥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내가 만일 그 안에 있었으면 어찌 했을까. 순간 두려움이 밀려온다. 상상조차 하기조차 싫다. 죽음 앞에 서 보지 않고 죽음을 말한다는 것은 오만이다.

나는 아침 일찍 세월호가 있는 목포 신항에 왔다. 이틀 일정으로 만행 중이다. 시간이 나면 작은 배낭 하나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수행자가 안거를 마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만행의 제일의 원칙은 혼자 떠나는 것이다. 둘만 돼도 침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이의 원칙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가급적 기차나 버스를 탄다. 제삼의 원칙은 절이나 허름한 숙소에서 잠을 잔다.

이번 만행 주제는 세월호로 잡았다. 그만큼 세월호 사건은 나에게 꼭 챙겨야 할 역사적 과제 같은 것이었다. 그 많은 학생들이 희생되었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그렇게 무참하게 일어났으며, 이 때문에 온통 나라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내 눈으로 세월호를 똑똑히 보고 싶었다. 현장을 보면서 세월호가 던지는 진정한 화두를 참구해 보고 싶었다.

지금 저 세월호는 진도 팽목항에서 인양되어 여기 목포신항으로 왔다. 사실 난 어제 팽목항에 다녀왔다. 아무래도 먼저 세월호가 침몰된 곳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포 버스터미널에서 진도로 간 다음, 군내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서야 팽목항에 도착했다.

팽목항.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멀리 빨간색 등대가 보이고, 수많은 노란 리본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부두 난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애타는 마음을 타일에 적어 놓았다. 한 문구가 가슴을 때린다. "바닷물을 다 퍼내서라도 세월호를 어머니들 가슴에 띄우라!" 그냥 목이 메었다. 또 한 옆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을 지도로 보여주었다. 사고 지점은 팽목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거차도 옆이다. 저 멀리 섬을 오가는 여객선이 보인다.

빨간 등대가 보이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디선가 애잔한 소리가 들렸다. 아, 풍경소리다. 아주 진하고도 슬프게 바람에 실려 온다. 작은 풍경이 부두 난간에 나란히 걸려 있다. 앙증맞은 종 밑에 조그만 물고기가 대롱대롱 달려 있다. 이 물고기가 세찬 바람에 흔들려 종과 부딪치고 있었다. 이 소리가 마치 진혼곡처럼 들렸다. 도대체 가련한 저들이 무엇을 잘못했다는 말인가!

빨간 등대에 가서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미세먼지 먹은 바람이 마구 이마를 때렸다. 조금도 춥지 않았다. 돌아서 나오니, 왼쪽에 플래카드가 난간에 걸려 있다. 언론에서 대서특필했던 단원고 고창석 선생님이다. 색 바랜 사진과 편지 글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플래카드에 이렇게 적혀 있다. "선생님은 마지막까지도 학생들을 구출하려고 목이 터져라 외치셨다던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주신 참스승이셨습니다." 살신성인이라는 말에 먹먹해 진다. 자신을 희생하여 인을 이룬다는 말이 아닌가. 어디 이게 쉬운 일인가?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왜 선장은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까? 이 말에 따라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 것이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말을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구출은 되지 않고 물은 서서히 차올랐다. 빠져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마도 학생들은 죽어가면서 괜한 선생님을 원망했을 수도 있다. 왜 나가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이제 와서 이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금강경에 보면, "일체 만들어진 것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란 가르침이 있다. 맞는 말씀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은 언젠가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하여 나라고 할 만한 고정된 실체가 없다. 하지만 세월호로 희생된 학생들은 이러하기에는 너무도 가혹하다.

최시선 수필가

마지막 여정으로 목포 유달산에 올랐다. 유달(儒達)이란 말은 모든 것에 통달한 선비란 뜻이다. 괴암괴석이 줄지어 솟아있고, 무엇보다 목포를 따뜻하게 품고 있는 형상이다. 과연 그 비경이 남도의 소금강이라 할 만하다.

일등 바위에 오르니 목포 신항이 훤히 보이고 그곳에 세월호가 뉘여 있다. 망원경으로 보니 더 잘 보인다. 아, 세월호는 만행 기간 내내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약력

▶월간 문예사조 수필 등단

▶CJB 청주방송 제5회 TV백일장 수필 장원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청주문인협회 부회장

▶저서 '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 '학교로 간 붓다', '소똥 줍는 아이들', 수필집 '삶을 일깨우는 풍경소리'

▶진천 광혜원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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