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 중부매일 DB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바람이 태풍으로 커지면서 차기 유력 대권후보까지 집어 삼켰다. 현직 광역자치단체장이 하루아침에 최악의 성 추문에 휘말렸다. 안희정(53) 충남지사가 정무비서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국민들에게 큰 혼란을 안겨주었다. 검찰에서 시작된 '미투' 파문이 문화계와 대학에 이어 공직사회와 정계까지 불어 닥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화계 거물급 인사들의 추문이 잇따라 폭로됐다. 이젠 비교적 참신하다는 50대 초반의 차기잠룡까지 추락했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언론인 주디스 밀러의 말대로 권력의 남용에 대한 '침묵의 문화'가 종식되는 분위기다. 이는 '미투' 폭로가 더욱 확산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 지사는 이번 성폭행의혹은 황당하고 충격적이다. 이 정도 인물이 대권주자였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안 지사 정무비서인 김지은씨는 엊그제 모 방송에 출연해 "안 지사의 수행 비서를 맡은 지난해 6월말부터 8개월 동안 네 차례의 성폭행과 함께 수시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미투운동이 사회전반으로 퍼져 나갔을 때도 성폭행이 있었다고 한다. 정치인은 사소한 스캔들에도 이미지에 상처를 입는다. 하물며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부하직원을 성폭행했다면 치명적이다. 핵폭탄급 초대형 악재를 맞닥뜨린 더불어민주당은 안 전 지사에 대한 제명 및 출당 절차를 밟으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안 지사는 직위를 내려놓고 정계를 떠나겠다고 했지만 자연인 안희정은 성범죄자로 전락해 형사처벌이 불가피해 보인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유^불리를 계산하고 있다. 민주당은 내부적으로 진보 진영 전반의 도덕성 문제로 전선이 확대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은 좌파 진영의 총체적 이중성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총공세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정쟁(政爭)의 도구로 삼을 일이 아니다. 지방선거전의 무기가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여야와 진보·보수를 떠나 정치인들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안 지사는 자신의 저서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에서 "아내가 원하는 건 일상의 소박한 행복인데 나는 그걸 못해주고 살아왔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뒤로는 야수의 얼굴로 김 씨를 성폭행했다. 이를 폭로한 김씨는 "다른 피해자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했다. 놀라울 따름이다. 모든 정치인이 안 지사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이런 인물이 대통령이 되면 국가가 어떻게 되겠는가.

이번 기회에 혹시라도 성범죄에 연루된 정치인들은 '미투'에 당하기전에 스스로 참회하고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유권자와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미투'지지를 선언하고 성범죄에 대한 엄격한 처벌을 강조하기 전에 자신의 책에서 여성비하 표현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사퇴시켜야 한다. 그래야 진정성이 받아들여질 것이다. 미국 작가 톰리스는 미투의 부상이 '엘리트에 대한 분노와 실망'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사태로 정치인에 대한 분노와 실망을 넘어 정치에 대한 불신까지 초래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정치의 퇴행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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