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무를 수행하다 숨진 비정규직 공무원도 순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제도적인 길이 열렸다. 일명 '박종철 법'으로 불리는 '공무원 재해보상법'이 어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통과한 것은 바람직한 수순이다. 그동안 현행법은 무기계약직, 비정규직 등이 공무 중 숨져도 공무원처럼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순직은 경제적 보상과 함께 존엄한 명예가 따른다. 이들은 같은 공무원이지만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살아서도, 죽어서도 차별받아 온 것이다.

작년 7월 충북 청주와 괴산등지에서 발생한 집중호우 때 수해복구 현장에서 사망한 박종철씨(충북도 도로관리사업소) 사연은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여실히 드러냈다. 17년째 도로보수원으로 일했던 박 씨는 시간당 90㎜의 폭우가 쏟아진 지난해 7월16일 아침 일찍 출근해 수해로 막혔던 도로가 빠른 시간 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현장에 투입됐다. 박 씨는 장대비가 퍼붓는 가운데 점심도 제대로 못 먹은 채 웬 종일 도로복구에 매달렸다. 박 씨는 몸이 녹초가 될 만큼 일하다가 오후 8시 20분쯤 작업 차량 안에서 잠시 쉬다가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하지만 그는 무기계약직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순직에서 제외됐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때문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비정규직 공무원은 죽음조차도 차별받는 실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비정규직 공무원에 대한 차별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공무원 재해보상법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정작 박 씨는 법 적용시기 때문에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뒤늦게 충북도와 민주당 소속 충북도의원들이 박 씨가 이 법률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건의문과 국민청원을 제기하면서 박씨 역시 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동안 비정규직의 순직이 인정된 것은 세월호 참사 때 학생들을 구하려다 숨진 김초원·이지혜씨등 기간제 교사 2명이 유일하다. 이들 역시 순직 대상이 아니었으나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3년3개월 만에 순직으로 인정받았다. 이번에 '박종철 법'이 국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공무를 수행 하다가 소중한 목숨을 잃고도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받고, 대통령의 관심을 받지 못해 외면 받는 다면 법의 공정성과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김초원·이지혜 교사는 직업윤리와 책임감 때문에 목숨을 걸고 생사의 기로에 선 학생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박 씨 역시 공무원이라는 사명감과 직업정신이 투철하지 않았다면 웬 종일 폭우 속에서 도로복구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법률이 제정되려면 아직도 난관이 남아있다.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법사위원회, 본회의 등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이번 법률안 통과는 비정규직 공무원 처우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탈진할 만큼 일하다가 숨진 박 씨가 순직으로 인정받는 것은 해묵은 제도적인 모순을 바로잡는 길이기도 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