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이른 새벽,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삽작문을 나섰다. 전날 불려놓은 멥쌀을 어머니가 조리개로 일어 물기를 빼 놓으면 십리 길을 걸어가 가래떡을 만들어 오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읍내에 있는 떡 방앗간으로 가는 길은 멀고 일기日氣마저 험했다. 눈이 쌓여 길은 미끄럽고 매서운 칼바람이 얼굴을 스쳐 따가웠다. 두 말이나 되는 젖은 쌀을 등에 지고 십리 길을 걸어가신 아버지.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그래도 맛나게 먹을 자식 생각에 마음은 가벼웠으리라. 꼭두새벽에 나섰건만 방앗간은 이미 가래떡을 빼러 온 사람들로 빼곡했다.

언젠가 아버지를 따라 방앗간에 간 적이 있었다. 방앗간은 사람소리, 기계소리로 이미 설날인 것 마냥 시끌시끌했다. 쌀을 거푸 빻아 수증기로 쪄서 기계에 집어넣으면 그 안에서 섞여져 기다란 떡이 나오는 게 신기하였다. 숭숭 김이 나는 떡가래를 주인아저씨는 가위로 숭덩숭덩 잘랐다. 얼마나 많이 가래떡을 뽑았는지 자로 잰 것이 아닌데도 고르게 길이를 맞추어 잘랐다. 굵다랗게 뽑혀 나오는 떡가래를 조금 잘라 맛보라고 주면 부드러운 떡살이 술술 넘어갔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오시나 하염없이 바라보던 삽작문. 따끈따끈한 가래떡을 맛 볼 생각에 동구 밖에서 얼마나 기다렸던가. 새벽에 나선 아버지는 어둑해서야 집에 돌아오셨다. 아버지가 가져오신 가래떡을 고구마로 만들어 놓은 조청에 찍어먹으면 달콤한 맛과 말랑말랑한 가래의 궁합이 환상이었다. 그야 말로 꿀맛이었다.

떡은 얼기 설기로 놓아 굳게 한다. 이튿날 적당하게 굳은 떡을 써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떡이 덜 굳으면 떡살이 칼날에 묻고, 너무 딱딱하면 아무리 날선 칼도 썰기가 어렵다. 떡 두말을 쓰는 일은 힘든 일이다. 작두로 아버지가 썰기도 하고 어머니와 언니들이 칼로 썰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동글동글하고 예쁘게 썰었다. 어린 나는 처음에는 재미있다가 조금만 지나면 힘이 들어서 꾀가 나기도 하고 손에 물집이 잡히기도 하였다. 그래도 다라에는 떡국점이 소복이 쌓였다.

사람 성품도 꼭 가래떡 같다. 너무 물러도 안 되고 너무 강해도 힘들다. 많이 무르면 처음에 좋을지 몰라도 오래가지 못하고 질린다. 덜 굳으면 떡살이 묻어나고 모양도 나오지 않는다. 너무 굳으면 엉덩이를 들어서 힘껏 힘을 가해도 손만 아프지 잘 썰어지지 않으니, 적당히 굳어야 잘 썰리고 모양도 마음에 든다. 그러나 적당한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늘 묵묵히 일하셨던 아버지는 어쩌면 겉과 속이 같은 가래떡 같은 분이셨다. 논, 밭일 하는 것도 힘들지만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힘들게 가래떡을 뽑아오셨으면서도 힘든 내색 하지 않으시고 맛나게 먹는 육남매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요즘은 대가족 먹으려고 두 말씩 가래떡 뽑는 집은 없을 것이다 지게에 지고 읍내에 나가다가 경운기에 동네 쌀을 싣고 떡을 하던 시절을 지나 요즘은 떡집에서 사다가 먹는 시대가 되었다.

모임득 수필가

정갈한 하얀색 가래떡은 새해아침 동글동글 떡국 떡으로 담겨졌다. 깨끗한 떡국을 먹는 것은 청결해야 한다는 뜻이 있다. 가래떡을 길게 뽑는 의미는 무병장수하라는 뜻이고, 엽전같이 썰음은 동그란 모양이 해를 상징하듯 떡국을 먹고 새해에는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부모님이 밤새 준비하신 새해아침을 이제는 내가 자식들을 위해 빚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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