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이광수의 장편소설 '삼봉이네 집'은 1930년대 동아일보에 연재된 작품이다. 일제의 '동척'에 농토를 빼앗기고 만주로 이주한 유이민의 참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 민족주의자 이광수의 공산주의 인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 등에서 꽤 논쟁적인 작품이다. 작품에는 삼봉이네 일가가 농토를 일구는 장면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한 겨울 추위와 허기 속에 울로초를 캐내며 한 뼘의 논이라도 더 풀고자 하는 노력이 눈물겹다.

산이나 황무지를 일궈 농지를 만드는 일은 대개 11월 이후 이듬해 농사가 시작되기 전인 4월 사이에 이루어진다. 요즘처럼 변변한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 괭이와 삽 호미 따위의 재래식 농기구만으로 나무뿌리 풀뿌리를 캐내고 돌을 파내며 농지를 만드는 일은 상노동에 해당한다. 더구나 바닥이 평평해야 하고 물길까지 내야 하는 논을 푸는 일은 밭을 일구는 일보다 몇 배나 더 힘이 든다.

필리핀 루손 섬 이푸가오 주의 계단식 논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이름난 곳이다. 등고선 형태의 논두렁 길이만 2만km나 된다는 이 논을 보면 저절로 탄성이 터져나오며 나도 모르게 머리가 숙여진다. 논의 역사 2천여 년. 그 많은 논을 풀기 위해 바친 아푸카오 족의 피와 땀과 눈물을 생각하면 종교적 외경심 같은 게 우러나온다. 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중국 남방의 계림에 가도 용승 요족 마을의 드넓은 계단식 논이 보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식이위천(食以爲天). 먹어야 사는 인간에게 밥은 하늘이나 진배없는 것. 그 밥을 위한 땅은 그래서 소중하고, 그 땅을 얻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우리라고 다를 리 없다. 경남 남해의 다랭이 마을, 전남 구례의 피아골 입구 직전 마을, 함양군 월경산 자락 등의 계단식 논들에서 그 같은 이치를 확인할 수 있다. 경북 울진에 가면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오로지 정과 망치만으로 바위를 뚫어 물길을 낸 봇도랑을 만날 수 있다. 괭이로 파고 삽으로 퍼내어 지게로 져내며 일궜을 논들이 그곳에 쏟은 우리들 조상의 땀과 피를 밝게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도대체 그 숱한 돌들을 어찌 다 파내고, 옮겨 둑을 쌓았을까. 무성한 풀과 나무들은 어찌 손으로 다 캐냈으며, 핏줄처럼 연결된 물길들은 또 어찌 다 뚫을 수 있었을까. 같은 물길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 보(洑)를 조직하고 공동작업을 했다 한들 그 수고로움이 덜할 리 없었을 터.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는 듯한 허기, 부실한 입성으로 살갗을 파고드는 한기와 싸우며 하는 일이었으니, 방한복 갖춰 입고 때때로 불 피워 삽겹살 구워 먹으며 일하는 요즘의 막일판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근대화 이후 대규모로 조성한 일부 간척지를 제외한 이 땅의 모든 논과 밭이 이렇게 해서 조성된 것이다.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조상들이 피땀 흘려 일궈 온 삶의 터전인 것이다. 농지야말로 다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조상 대대로 피땀 흘려 일궈 온 논이고 밭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그것들이 필리핀 이푸가오 주의 그것과 다를 리 없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경지 조성 기술은 세계적으로 이름났다. 과거 중국과 러시아가 각기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 흘러들어간 조선인들을 자기네 농지 개척에 이용하려는 셈 속에서 이민 정책을 수립했던 것이 그 예다. 한 뙈기의 밭도 그냥 주어진 것은 없다. 모두 선조들의 눈물겨운 노고와 피와 땀으로 조성된 것들이다. 그 속에는 자손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 대를 이어 먹고 살 수 있는 안전한 토대를 만들어 주고자 하는 염원이 배어 있다.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그런데 그 소중한 유산이 마구잡이로 파헤쳐져 사라지고 있다. 택지나 도로, 공장 용지 등으로 전용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5년까지 1%대를 밑돌던 농지 감소율이 2006년 처음 1%대를 넘어선 뒤로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수백 수천 년의 역사를 두고 일궈 온 농지에 담긴 의미와 역사성, 거기에 담긴 선조들의 숭고한 뜻과 피땀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지한 성찰도 없이 무턱대고 파헤치는 일은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이다. 식량 자급률 23%도 안 되는 나라에서 대체농지 확보 방안도 없는 마구잡이 전용은 어리석다. 세계는 이미 식량 전쟁의 국면에 들어서 있다. 집이든 차든,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식량에 우선하는 생존 수단은 없다. 어떻게 보아도 지금의 농지 행정은 앞을 볼 줄 모르는 고식지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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