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충북과학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지난해 11월 14일 충북도교육청 앞에서 학교 인근 축사건립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청주시의 허술한 축산관련조례가 인근 대도시 축사의 이전을 부추기고 있다"며 조례 개정을 요구했다./신동빈

지난해 11월 불거진 충북과학고 주변 신축 축사난립사태가 해를 넘겨서도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청주시는 상당구 가덕면 상하리, 남일면 문주리 일대에 이미 15곳의 축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2년간 18곳의 '벌집' 형태 축사를 신규 허가했다. 문제는 이들 축사와 인접한 곳에 충북과학고, 단재교육연수원, 유아교육 진흥원이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공부에 전념해야할 충북과학고 학생들이 축사난립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충북과학고 주변 축사난립이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됐지만 충북교육청도, 청주시도 상대 탓만 하면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을 위한 행정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최근 충북과학고 학생들이 건축 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제기한 것은 절박한 심정을 반영한 것이다. 고교생들까지 법적인 자구책에 나설 만큼 우리사회의 갈등해결 시스템은 작동 불능상태에 빠진 것이다.

충북과학고는 축사에 갇혀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학교 150여명의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청주시는 민가 기준으로 10가구 이상 거주지역에서 반경 500m 이내에 들지 않는 지역이면 축사를 허용해왔다. 하지만 학교 기숙사는 인구밀집지역으로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150명이 몰려 산다면 요즘 시골기준으로 큰 마을에 해당한다. 당연히 청주시는 축사를 허가해줘서는 안되지만 지난 2년간 집중적으로 허가를 내줬다. 탁상행정에 복지부동의 결정판이다. 향후 한우와 젖소 600여 마리를 사육하는 30여 곳이 넘는 축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면 학생들은 공부할 때는 물론이고 기숙사에서 생활할 때도 지독한 악취와 소음, 해충 등에 시달릴 것이 뻔하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하거나 과학영재가 탄생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오죽하면 충북과학고 1, 2학년 학생 86명이 청주시 등 행정기관을 상대로 충북도행정심판위원회에 축사 건축 허가 처분 취소 청구와 건축 허가 효력정지 집행 신청을 냈다. 학생들까지 나설 만큼 심각한 상황이지만 충북교육청의 대응은 안일하다. 물론 충북도교육청은 축사 건축주 17명(18개 축사)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청주지법에 공사중지 등 가처분 신청을 내긴 했지만 사태가 이렇게 악화될 때까지 도대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관심을 갖긴 했는지 궁금하다. 김병우 교육감은 지난 17일 도의회 임시회에서 "교육 당국과 지자체, 의회가 지혜와 노력을 모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전형적인 '유체이탈화법'이다. 교육청 문제를 남 얘기하듯 할 것이 아니라 김 교육감이 팔을 걷어 부치고 갈등을 조정하고 지혜를 짜내야 한다.

충북교육청과 청주시가 수수방관하면 학교주변 축사난립사태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재연될 수 있다. 이미 허가를 다 내주고 이제 와서 사법기관에 떠넘기는 식의 행정이라면 스스로 무능하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학생들까지 나서서 법적 대응할 정도면 도대체 충북교육청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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