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화재 참사 이튿날 현장에 분향소가 설치됐다. / 중부매일 DB

지난달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는 소방당국이 긴급재난 사태 초기에 순간의 선택을 잘못하면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였다. 제천참사를 통해서 드러난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는 열손가락이 모자랄 만큼 많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점이다. 화재 초기에 구조대가 정확한 판단만 했어도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관련 유족들이 집중적으로 질타했고 소방청도 자인(自認)하고 있다. 화재현장에서 소방관들의 노고는 아무리 치하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제 2의 제천화재참사를 막기 위해서도 미숙한 초동대응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번 참사에서 가장 쟁점이 된 것은 구조대의 판단미스로 인한 골든타임 지체다. 소방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질의에 대비해 작성한 내부 자료는 초동대응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보여준다. 소방청은 "구조요청 신고를 처음 접수한 것은 첫 화재신고 6분 뒤인 오후 3시 59분"이라며 "이후 오후 4시 12분까지 상황실에 통화한 사례, 당시 화재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오후 4시 15분 전후까지는 생존자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생존추정 골든타임은 오후 4시 15분경이 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따라서 오후 4시 10분 전에는 내부 진입에 성공했어야 생존자를 구출할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조대가 화재현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인 것을 감안하면 15분간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낸 것이다. 13명의 선착대는 건물 1층 부근 2t짜리 LPG탱크의 폭발 방지에 주력하고 오후 4시6분쯤 도착한 제천구조대는 사람도 없는 지하 골프연습장을 수색했다. 구조대는 골든타임을 모두 놓친 뒤 오후 4시33분쯤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2층에 진입했다. 이때는 생존자가 거의 없었다. 유족들에겐 기가 막힐 일이다.

미국의 재난역사엔 '허드슨강 기적'이 있다. 지난 2009년 1월 승객 155명을 태운 US에어웨이 항공기가 뉴욕 라구아니아공항을 출발한지 6분 만에 철새 떼가 엔진에 충격을 가하는 바람에 맨하튼 고층빌딩과 충돌할 뻔 했으나 뉴욕 허드슨강으로 비상동체착륙을 시도했다. 위기의 순간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올바른 판단과 투철한 직업윤리 그리고 불과 20분 만에 사고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원들이 자기책임을 다해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없는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이후 우리사회는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됐다. 재난사고의 늦장대응도 후진국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고질병은 여전하다. 제구실 못하는 비상구, 소방차 진입로 막은 불법 주차, 형식적인 소방안전점검, 열악한 소방장비 및 인력, 국회에서 잠자는 소방관련 법률 등 참사원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골든타임에 적절한 대처만 했어도 사상자가 크게 줄었을 것이다.

소방청은 내부 자료에 구조대 도착즉시 2층 진입을 시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골든타임'에 현장의 정확하고 신속한 판단이 소중한 인명을 살릴 수 있다. 그럴 려면 소방인력의 확충과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 제천참사가 소방청에게 뼈저린 교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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