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도로에서의 불법주차가 초기 화재 진화 실패의 한 원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대중숙박시설(새터로) 등 주변 도로 곳곳에서 소방차 진입은 물론 승용차 통행에도 어려울 정도로 불법 주차된 모습을 볼 수 있다. / 김용수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참사는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과 후진적인 관행이 낳은 인재(人災)다. 한낮에 도심 한복판 8층짜리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29명이 사망하고 39명이 부상당한 것을 쉽게 납득할만한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불법증개축 남발, 소방관들의 늦장대응, 열악한 소방장비와 인력, 잠자는 소방 관렵 법률 그리고 불법주정차등 시민들의 준법의식 결여등 우리사회의 온갖 고질병들이 축약돼 있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은 전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등을 돌린다. 매사 이런 식이니 화재참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고 정치인들을 불신하는 것이다.

이번 참사는 인재라고 볼 수밖에 없는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다. 7층짜리 건물은 불법으로 8층과 9층이 증축됐으나 준공이후 한 번도 현장점검이 이뤄지지 않았다.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2층 여탕은 아예 비상구에 적치물이 쌓인 채 폐쇄됐으며 화재경보 시스템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소방안전점검은 2층 여탕을 제외한 채 형식적으로 이뤄졌다. 또 건물외벽은 저렴한 드라이비트 공법을 적용해 화재를 키웠으며 그나마 소방대에서 긴급 투입한 굴절사다리차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됐다. 더 황당한 것은 소방대가 건물 설계도를 챙기지 않는 바람에 정확한 진입이 늦어지고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특히 좁은 도로양쪽의 불법주정차 차량 때문에 소방차 진입을 막았으나 차량을 옮기거나 부술 수 있는 법규도 없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엊그제 국회를 찾아 소방관련 건축법등 이번 화재사고가 남긴 과제들에 대한 제도개선을 정치권에 요구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소방관련 시설 주변구역 주정차특별금지구역 지정, 불법주정차에 대한 범칙금 강화와 인명구조를 방해하는 차량의 신속한 견인을 위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구제법안 마련 등이다. 이 지사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국회 재난안전대책특위 변재일 위원장을 직접 만나 법령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 정치인들이 몰라서 제도개선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골목길 모퉁이나 소방시설 주변을 주정차 특별금지구역으로 정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지난 3월에 벌써 발의됐다. 법규를 위반하면 현행보다 2배 이상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개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선정되긴 했으나 캐비넷 안에서 잠자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이 "희생자 분향소에서 일일이 조의를 표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올렸다. 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유족들 앞에서 무릎끓고 위로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통해 진정성을 보이려면 법령개정부터 나서고 고질병의 혁파와 국민의식 개혁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도 바뀌는 게 없으니 국민들의 눈에 '쇼'하는 것으로 비취지는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