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우화(寓話)속의 말(馬)이 된 우리

기사승인 2017.12.18  21:40:00

공유
default_news_ad2

- [세상의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 pixabay

어느 날 사슴과 말이 풀밭의 소유권을 놓고 한바탕 싸움이 붙었다. 발 빠르고 덩치가 큰 말이 이길 것으로 예상됐지만 사슴이 이겼다. 말은 사슴의 큰 뿔을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덩치 값도 못한 말은 분함을 이기지 못해 몇 날 며칠 식음을 전폐하며 보복의 궁리만 하고 있었다. 때마침 밭을 갈고 있는 농부를 만났다. "소원 좀 들어주세요. 내 풀밭을 빼앗은 저 사슴을 죽여주세요?" 일단 사슴만 죽여주면 된다는 요청이었다. 농부는 '너 잘 만났다'라는 의도를 숨긴 채 쏜살같이 활과 화살을 가져왔다. 의기양양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는 사슴을 활을 쏘아 죽였다. 풀밭은 말의 소유가 되었다. 농부는 말에게 말했다. "내가 네 소원을 들어주었으니 나도 너에게 바라는 게 있단다, 앞으로는 나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러고서 농부는 말 등에 안장을 얹고 말 입에 재갈을 물렸다. 말은 너무 불편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말은 죽을 때까지 안장을 지고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르게 되었다. 말은 농부의 도움으로 풀밭을 차지했지만 그 대가로 자유를 잃고 농부의 노예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보복에 눈이 멀어 생각 없이 도움을 받았다가 낭패(狼狽)를 본 말의 서글픈 우화다.


우화지만 우화로 치부하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 정치적 동물들이 모여 사는 사회를 너무나 잘 빗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말이다. 사회구조의 촘촘함과 경직화, 사회적 사실의 압력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사람들이 모두 나설 수 없다. 모두 위정자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때문에 천부적인 정치권력을 그들 가운데 일부 소수에게 합법적 위임이 불가피하다. 이런 소수를 우리는 정치 권력자, 위정자라 한다.

우화속의 '초원'은 국가와 사회이며, '사슴'은 국가와 사회를 좀먹는 각종 부조리와 비리, 범죄 등 일탈행위다. '말'은 사회와 국가의 단위인 우리, 평민이다. '농부'는 위정자다. 우리는 국가와 사회의 자원이나 자본 그리고 권력을 보다 많이 차지하려고 경쟁을 한다. 말이 경쟁이지 사실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판친다. 자칫 국가와 사회는 무질서, 무규범이 상태가 된다. 국가와 사회 존립에 크나큰 구멍이 생긴다. 여기서 국가의 강제력이 따르는 사회규범이 필요하다. 이른바 법이다. 이 법을 위정자들이 만든다. 그러니까 평민들은 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정치권력을 소수에게 위임한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안전하게 존속하도록 해 달라는 요청이다. 하지만 말이 풀밭을 무단 점거한 사슴을 잡아달라고 농부에게 부탁한 꼴이다. 위정자는 권력의 원천을 망각한 채 그들만의 명분과 논리를 우선하다. 대리인의 역할을 넘어 권력남용이며 월권이 비일비재하다. 그들의 신명 난 잔치에 우리는 완전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 말이 농부의 노예가 되듯 평민들은 위정자에 따라 움직이는 그의 그림자가 되었다. 어찌 보면 평민들은 발가벗긴 채 영원히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불쌍한 자들이다.

작금의 경제는 추락, 정치는 이전투구, 교육은 줄 세우기 혈안, 안보는 벼랑 끝, 사회는 무질서와 상호비방 난무, 우리 정신은 혼미, 산야와 거리는 황폐하다. 더욱이 미국, 일본, 중국 등의 국제 정세는 우리를 비웃고 있다. 아니 가지고 놀고 있다. 무엇 하나 기준이 제대로 선 것이 없다. 모두 혼란스럽다. 국체(國體)가 말이 아니다. 어찌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고 이 지경으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로 나라를 내몬 자는 누구 일까? 권력을 송두리째 빼앗긴 말(馬)로 전락한 평민일까? 아니면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농부가 된 위정자일까? 평민들은 이미 권력을 위임, 아니 빼앗겨 어떤 힘도 없다. 위정자들이 국가위기와 국가 무질서의 주범이다.

위정자들은 맥락(脈絡)을 무시하고 환부(患部)만을 도려낸다. 정족지세(鼎足之勢)를 무시하고 한쪽만 높이려 한다. 결국 벼랑 끝으로 나라를 내몰고 있는 셈이다. 선장이 술에 취했고, 돛대와 키가 파손됐고, 선원들이 노예가 되어 손발이 묶여 있고, 기관마저 고장이 났다. 표류조차 기대할 수 없다. 이제 난파밖에 남지 않았는가? 이것이 오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의 미래가 아닐까? 고려시대 원나라 지배와 조선시대 인조 때 병자호란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두렵다.


중부매일 jb@jbnews.com

<저작권자 © 중부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