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한인섭 편집국장

이시종 충북도지사가 국회를 방문해 현안 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 중부매일 DB

90년대 초반 관선 제천시장을 지낸 K씨는 신년 예산을 편성하는 시점이면 내무부 뒷골목 다방 한켠에서 벌어졌던 풍경을 이렇게 이야기 했다.

"반드시 예산을 따야할 과제가 떨어지면 내무부 주변 다방 몇곳을 골라 끗발있는 계장·과장들과 차례로 약속을 하지요. 예산 달라 장광설을 늘어놓다 보면 3번째 만남은 40~50분 늦는 게 보통입니다. 그래도 시골 공무원을 다방 한켠에서 마냥 기다립니다. 헐레벌떡 들어서면 손을 번쩍 치켜 들며 반갑게 맞곤 했지요. 회식비 명목의 돈봉투를 섭섭지 않게 쥐어줬기 때문이지요."

2010년 3월 26일 밤 8시 35분께 충남 태안군 남면 원정리 청포대해수욕장 인근 해변에서 농림수산식품 직원 7명 등 8명이 탔던 승합차가 해변 갯바위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차량 운전을 했던 태안군청 계장 A씨(당시 46세)는 농식품부 직원들을 태운 차량을 몰고 백사장을 질주하다 바위와 충돌했다. 국장·과장급 등 농림부 직원 13명은 태안군 남면 별주부마을에서 열린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워크숍'을 했다. 저녁 나절 횟집에서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한 후 숙소로 향하던 길 이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충북도청을 비롯한 지방관가(官街)에서는 운전을 하다 함께 사망한 태안군청 계장에 주목했다. 그는 태안군을 찾은 농림부 직원들을 종일 수발한 후 숙소까지 태워다주다 사고를 냈다. 지방관가에서는 아마도 A씨가 농림부 예산 확보를 염두에 두고 '을(乙)의 길'이자 '흑역사(黑歷史)'를 자처했을 것이라고 수근댔다. 이런 류의 '수발' 결과는 의외의 결과를 낳는다. 때로는 예상했던 사업비 숫자에 아라비아 숫자 '0'이 하나 더 보태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과거 관가의 악습이다.

한인섭 편집국장

이재은 수원시정연구원장(전 경기대 부총장·전국지방분권협의회 공동대표)은 14일 증평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지방분권개헌 토론회(중부매일·충북도 국토균형발전 및 지방분권촉진센터 공동주관) 주제발표에서 중앙 통제와 지방의 의존이 체질화 된 자치분권 문제점을 실랄하게 지적했다. 그는 중앙정부가 쥐락펴락하는 지방자치를 '곳간 열쇠를 움켜 쥔 못된 시어머니 정치'라고 규정했다. 그는 중앙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한 지방정부의 로비행태도 꼬집었다. 그는 장차관과 기재부 예산실을 상대로 한 로비를 고공전(戰)이라 했다. 중앙부처 실무진을 상대로 한 보병전, 국회와 청와대를 향한 로비는 외교전이라 표현했다. 고향·고시·학교 동창 등 인맥을 쫓는 경우는 게릴라전이라 했다. 중앙부처가 지방을 쥐락펴락 하는 구조가 지속되면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어려운 '관관(官·官)로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자체 예산은 단체장들이 장차관과 국회 실세들을 찾아 사정사정, 구걸하듯 얻어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지방분권형 개헌을 쟁취해야 하는 이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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