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금모으기 운동이 전개됐던 1998년 1월 12일 충북도청 대회의실에는 접수창구가 개설됐다. 주병덕 당시 충북지사가 캠페인에 참여해 귀금속을 접수하고 있다./중부매일 DB

꼭 20년전 오늘 임창렬 경제부총리의 역사적인 발표로 한국사회는 엄청난 변화와 고통이 시작됐다. 1997년 11월21일 임 부총리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고 공식발표했다. 정부는 그해 12월 3일 IMF의 구제금융에 공식 합의하면서 IMF 관리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이후 한국은 6.25이후 최대의 사회적 변혁기를 맞았다. 김영삼 정부시절 경제적 펀더멘탈이 튼튼하다며 큰 소리를 쳤던 경제 관료의 말은 허구였다.

한국경제는 맥없이 주저앉았으며 수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파산하거나 부도에 직면했다. 부도 도미노사태로 인한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거리를 맴돌았으며 대학졸업장을 손에 쥔 젊은이들은 취업하지 못해 청년실업이 대두됐다.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경제적인 실권을 갖지 못하던 가장으로 인해 이혼률이 급증했고, 중산층이 무너졌으며 생계 때문에 아이를 양육할 수 없어서 아이들을 버리고 떠나버리는 극한적인 상황도 벌어졌다. 또 자살률이 급증했으며 각종 범죄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외환위기는 당시 수면아래에서 끓고 있던 정치, 경제,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점이 한계에 부딪쳐 분출된 결과였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 정부의 미흡한 정책대응, 그해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갈등과 대립, 대마불사로 상징되는 재벌의 방만경영, 경제학자와 경제관료등 전문가그룹의 판단 미스, 언론의 감시기능 부재, 시민단체의 편들기, 노동단체 등 각종 이익집단의 제 밥그릇 챙기기 등이 복합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후 한국은 IMF 관리체제아래서 3년만인 2001년8월 구제금융을 갚으면서 슬기롭게 환란을 극복했다. 전 국민은 금 모으기에 동참했고 기업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신기술개발로 오뚝이처럼 일어나면서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때문에 한국은 외환위기 극복의 모범생으로 꼽히지만 그 후 20년 한국사회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지난 14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IMF 외환위기가 현재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에 대한 국민여론은 환란(患亂)의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를 말해준다. 물론 검소한 소비문화 확산과, 기업과 사회 전반의 투명성 제고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짙은 그늘도 만만치 않다. 외환위기가 한국경제에 미친 부정적 영향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 31.8%는 '소득격차, 빈부격차 확대 등 양극화 심화'를 꼽았다. 28.0%는 '대량실직, 청년실업 등 실업문제 심화', 26.3%는 '계약직, 용역직 등 비정규직 확대'라고 답했다. 정확히 지금 우리사회가 직면한 과제다.

지금 환란 재발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기업체질은 강화됐으며 국가신용등급도 올랐다. 하지만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무상시리즈'가 말해주듯 무작정 퍼주기 식 방만한 복지정책과 공무원 확충, 반기업 정서로 인한 투자 위축등은 언젠가 또 다른 국가적인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 20주년 맞은 환란의 교훈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