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포항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하선대 /뉴시스

떠남과 설렘이 동의어가 되는 여행,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서 지내온 친구 둘과 함께 경북 포항으로 2박3일 여행을 떠났다. 인생의 험준한 길을 꿋꿋이 걸어온 꿈 많은 소녀들은 어느 덧 이순을 코앞에 두고 있다. 서울과 지방에 살고 있지만 늘 곁에 있는 것 같고, 목소리만 듣고도 마음을 읽어주는 친구들이다. 삼총사가 같은 옷, 같은 스카프로 멋진 추억을 남기자며 준비해온 친구의 넉넉한 마음은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질 않을 만큼 그대로였다.

밤에 도착한 영일만 일대는 누각을 밝히는 화려한 조명으로 옷을 갈아입고 포스코의 스카이라인과 멋지게 어우러져 그저 황홀하기만 했다. 해안 길을 따라 설치된 버스킹 무대에는 오색조명이 비추고 바다를 조망하며 공연을 즐길 수 있어 더욱 분위기가 좋았다. 노래에 대한 답례로 슬그머니 모금함에 돈을 넣어주는 친구에게서 여유와 향기를 느낀다. 자연과 무대가 어우러진 밤바다의 낭만은 힐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신성한 바닷가에서 그리움을 함께 나누는 이 시간은 다시 찾아 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선물 같은 첫날밤은 짧기만 했다.

다음 날 아침은 커피로 잠을 깨우고 숙소 주변 호미 반도 해안 둘레 길을 걸었다. 임곡마을의 테마파크에는 연오랑 세오녀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벽화로 설치해 놓아 더욱 정겨웠다. 우리는 세오녀의 비단은 못 짜더라도 충청도 뚝심의 무명 같은 질박한 우정을 다듬질하며 살자고 결의했다. 신라마을에는 초가집들로 토속적인 순박함을 더했다. 자세히 보니 짚이 아닌 기능성 끈을 엮어서 해풍에도 끄떡없게 지붕과 담을 치장해 놓았다.

오후에는 2,500개의 점포로 이루어진 죽도시장을 둘러보고 고래 고기를 맛보려 했으나 날씨가 더워 물회로 점심식사를 했다. 포항 물회는 원래 고추장에 비벼 먹지만, 요즈음은 관광객을 상대로 새콤달콤한 육수를 개발하여 소면과 밥을 말아 먹을 수 있었다. 식사 후 우리는 유람선에 올랐다. 배가 운항을 하자 관광객을 상대로 외국인 공연단이 공연을 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춤과 노래로 스트레스를 풀어야만 된다는 듯이 영일만 해상 관광은 뒷전이고 한껏 고조된 선상 클럽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배에서 내려 한반도 지도 위 호랑이 꼬리부분에 해당하는 호미곶으로 향했다. 팬션을 찾아가보니 시설이 노후 되어 불편했지만 해맞이를 기대하며 이틀째 되는 밤을 보냈다. 퍼내도 퍼내도 마른지 않는 샘물처럼 결혼 후 지난 30여년의 삶으로 눈물짓다가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다며 웃음 지었다.

김민정 수필가

아침일찍 해가 뜰 것에 대비하여 조금 일찍 호미곶으로 향했다. 다행히 날씨도 맑았다. 새벽이라서 기온이 조금 찼지만 오랜만에 보는 바다는 싱그러웠다. 애국가 영상으로만 보았던 그 손, '상생의 손'이 육지에는 왼손이, 바다에는 오른손이 조형되어 있었다. 서로 도우며 화해와 상쇄의 기념정신을 담고 있는 그 손바닥처럼 우리야말로 상생의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

드디어 해가 뜨기 시작했다. 한반도에 가장 먼저 빨갛게 올라오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신비와 경이로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잠재되어 있던 촉각이 되살아났다. 이 순간은 사랑의 빛, 감사의 빛 희망의 빛이 삼위일체가 되어 삶의 중심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퇴직 후 노후의 삶을 함께 보내자며 떠오르는 해를 보며 약속했다. 쓰고 온 모자가 예쁘다하면 기꺼이 벗어주고, 뽕 고데기가 좋다하면 아낌없이 주고 가는 친구들과의 이 순간을 꽉 잡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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