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영화 <범죄와의 전쟁> 스틸샷 / 뉴시스

1990년 5월 19일 조직폭력배의 대명사 김태촌(당시 42세)은 평소 처럼 서울 동부이촌동 미주아파트 앞 J 사우나에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김태촌이 사우나로 들어가자 검거팀 수사관 1명은 욕조까지 따라 들어가 밀착감시 했다. 사우나를 나서자 주임검사가 김태촌을 향해 "꼼짝마라"며 권총을 빼들었다. 수사관들은 그를 덮쳤다. 조폭 얘기를 다룬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의 저자 조성식은 김태촌 검거 장면을 이렇게 썼다.

당시 '최고의 깡패' 김태촌에게 총을 겨눈 이는 조성식 검사(당시 38세·전 대검 강력부장·현 변호사)였다. 그는 이미 주먹들에게는 해방 이후 최고의 악질 검사로 각인이 됐던 터였다. 그는 부임하는 곳마다 조폭을 쓸었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잠 안자고 열심히 연구해 깡패를 잡으면 남다른 보람을 느낀다. 나는 나쁜 놈을 보면 잠이 안 온다"는 말을 할정도로 검사 생활 내내 '조폭'에 천착했다. 그래서 그는 90년대 초반 임용된 혈기 방장한 검사들에게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연수원에서 무용담을 들은 이들은 '검사는 당연히 권총차고 조폭을 잡는 일을 하는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될 정도로 깊은 인상을 심은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김태촌에 눈을 돌린 것은 폭력조직이 '종교'로 위장했다고 본 것이다. 수감과 출소를 반복하던 김씨는 이 무렵 신우회라는 종교모임을 결성했다. 그가 경기도 파주의 한 기도원에서 '기도모임'을 개최하자 수백명의 '동생'들이 몰려왔다. 검찰은 신우회를 범죄조직으로 봤다. 김씨는 '수괴'로 기소됐다. 징역 10년에 보호감호 7년이 선고됐다.

김태촌 검거는 노태우 정권의 야심작 이었던 '범죄와의 전쟁(1990년 10월 13일)' 특별선언의 서막 이었다. 전국적으로 소탕에 나섰던 검찰은 청주는 물론 음성, 제천지역 '논두렁 건달'들까지 잡아 들였다. 청주교도소까지 빈방이 없을 정도였다. 한꺼번에 수십명이 조폭이 재판을 받자 법정은 '콩나물 시루'같은 풍경이 연출됐던 시절이다.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사실 노태우 정권은 선거과정에서 조폭들을 엄청나게 동원했다. 정권을 잡자 이런 식으로 '청소' 했다. 알 바 없는 국민들은 '박수'를 쳤다. 주먹들의 입장에서는 이만한 '배반'도 없었다. 영화로도 제작됐던 '범죄와의 전쟁'은 이미 오래전 얘기가 됐다.

강산이 몇차례 바뀐 탓인지 주먹세계도 딴판이 됐나보다. 경찰청 국정감사는 조폭 얘기는 '단골'이다. 올해도 마찬가지 인데, '동네조폭'이 시선을 끌었다.

자료를 보면 검거자가 매년 늘었다는데, 대부분 서민영업장 기물 파괴나, 욕설 등 '잔챙이'가 대부분이었다. 유명조폭이나 '다운타운(도심)' 얘기는 사라졌다. 이젠 합법적 방식으로 사업을 하고, 상대조직과의 무리한 '전쟁'도 없다고 한다. 주먹세계도 세태에 따라 '진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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