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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거닐었던 숲길…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길

기사승인 2017.10.17  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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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가 있는 충북 100경] 26. 세조길

꿈같은 건 없다. 삶의 의무와 해야 할 일들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의무감으로 살아온 일상을 뒤로 한 채 숲을 걸었다. 가을볕이 산 정상에서 계곡으로, 숲길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붉게 익어가는 나뭇잎이 하나 둘 흩날린다. 바람이 어깨를 스치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삶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더디고 괴로운지, 내 안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싶다.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한아름 노송들이 세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무슨 사연이 많은지 온 몸이 갈라터졌다. 흑갈색의 겉살은 오랜 풍상을 견딘 흔적이다. 하여, 생명의 자연스런 발현이며 인고의 노정이 순탄치 않았음을 웅변하고 있다. 속살은 분명 순하되 질길 것이다. 푸른 솔잎에서 진한 향이 가득하니 소나무는 그 자체만으로도 종의 명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는 세조길이다. 2016년 9월 개통한 세조길은 조선 7대 임금인 세조가 요양 차 스승인 신미대사가 머물던 복천암으로 순행 왔던 길로, 천년고찰 법주사에서 세심정 간 2.4㎞ 구간이다. 그 여정은 오리숲에서부터 시작된다. 직위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법주사 하마비는 오리숲 끝이자 세조길 입구에 세워져 있다.

세조길은 울울창창 숲과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계곡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커다란 호수를 이루니 숲과 호수와 바람과 햇살이 숨바꼭질을 한다. 삶에 지친 나그네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호수를 바라본다. 맑다. 푸르고 선하다. 호수에 비친 풍경속에 뭉게구름이 흘러간다. 지나온 날을 생각하니 우리의 인생이 저 구름처럼 흘러가는데 괜한 욕심 부리며 달려온 것 같다.
 

탈골암과 목욕소와 세심정을 가는 길은 역사의 길이며 신화와 전설의 숲이다. 세조는 지난날의 악행을 뉘우치고 참회의 뜻으로 아버지 세종의 발자취를 찾아 청주로 왔다. 초정약수와 청주향교를 둘러 이곳까지 왔다. 어떻게 살 것인지, 조선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묻고 싶었던 것이다. 법주사에 도착하자마자 대법회를 열었다. 조선의 번창과 백성의 행복을 기원했다.

세조는 바위 아래 그늘에 앉았다.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욕망으로 얼룩진 삶을 생각했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용서를 구할까. 용서는 사람의 몫이 아니다. 오직 하늘만이 알고 하늘만이 용서할 수 있으니 살아있는 날까지 어짊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바위가 사람의 눈썹처럼 생겼다. 그냥 웃었다.


계곡은 깊고 느리며 물은 맑았다. 흐르는 물은 결코 뒷걸음질 치지 않는다. 멈추지도 않는다. 수적석천(水滴石穿). 물방울이 모여 바위를 뚫는다고 했던가.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크고 높은 바위를 뚫으니 깊은 샘이 되었다. 세조는 이곳에서 목욕을 했다. 소리가 무성했다. 분명 자연의 소리일진데 백성의 통곡처럼 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나온 삶이 부끄러울 뿐이다.

세심정에 오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랫동안 앓던 피부도 좋아졌다. 당장의 이익을 따르지 말고 자연의 이치를 따라 선하게 살겠노라, 오직 백성과 함께 하겠노라 다짐을 했다. 세속을 떠난 산에서 마음을 씻는 정자라는 뜻의 세심정은 무소유(無所有)의 가치를 묵상토록 했다. 세심정에서 문장대 쪽으로 더 올라가면 복천암이 있다. 암벽을 끼고 만들어진 복천암에서 세조는 신미대사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등짐을 풀고 앉아서 하늘을 본다.
 

세조길을 걸었으니 허기진 배를 채워야겠다. 보은의 대표 음식인 약초산채정식이다. 보은은 산이 깊고 땅의 기운이 정결해 온갖 기기묘묘한 약초가 많다. 이곳의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약초와 무공해로 손수 재배한 버섯과 채소류 등 무려 50여 가지가 한 상에 차려지는 정식은 속리산만의 별미다.

맛과 영양과 웰빙, 그리고 충청도의 훈훈한 인심까지 더하면 보약이 따로 없다. 한 젓가락씩 집어 꼭꼭 씹어 가며 향기를 음미하다 보면 천년을 넘게 살아온 세조길의 신이함을 느낄 수 있다. 산채나물의 여리고 촉촉한 맛, 담백한 국물이 입안을 적시는 된장국, 구수한 맛의 숭늉으로 마무리 하는 뒷가심. 오늘 나는 눈과 입과 마음 모두가 호사스럽다.

글 / 변광섭(에세이스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콘텐츠진흥팀장)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청주성모병원 홍보팀장)


중부매일 jb@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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