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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편지와 문화 다양성

기사승인 2017.10.12  20: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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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세상] 조형숙 서원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클립아트코리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10년 넘게 정보 보안과 디지털 포렌식 업무를 맡았던 분이 우리 대학의 융합보안학과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 교수님과 만나면 현장의 재미난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가끔 협박편지의 필체를 감식할 때가 있어요."

교수님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자 다들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협박편지의 필체에 따라 분류를 하고 분석합니다. 일단 그 분류에 따라 협박범을 프로파일링하는 거죠."

그런데 한 분이 이의를 제기했다. "요즘 웬만하면 워드로 작성하지 않나요? 이미 사람마다 필체가 다르다는 건 상식인데, 육필로 협박편지를 쓰면 쉽게 잡히는데 워드로 치면 검거될 확률도 낮고 안 그런가요?" 듣고 보니 나도 요즘은 워드로 작성하는 것에 익숙해서 공책을 잘 쓰지 않는다. 범죄자가 어지간히 머리가 나쁘지 않은 다음에야 필체가 드러나게 협박편지를 쓸까 싶기도 했다. 어떤 대답이 나올까 궁금하여 과학수사를 맡았던 교수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요즘은 점차 워드로 작성한 편지가 늘어가고 있긴 하죠. 그렇지만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착석해서 키보드를 치고 하는 동안에 마음이 차분해지기 때문에 범죄로 덜 이어져요. 그래서 협박편지의 경우에는 아직도 육필 편지가 많습니다."

하긴 그렇다. 나도 막 떠오른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첩에 잽싸게 적어두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워드로 쳐서 컴퓨터에 저장해 두어야지 하면서 컴퓨터를 켜면 부팅되는 사이에 맥락을 잊어버리거나 흥분되었던 마음이 싹 가신 적이 있다.

"그거 아세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출신 교수님이 또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시려나 보다. "요즘 한국에도 외국인이 증가하면서 필체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필체 감식하다 보면 다양성에 놀랄 때가 많아요. 재미있습니다."


나는 다문화-이중언어교육을 전공한 이후로 이주배경 학생들의 언어와 문화가 나의 관심사다. 신이 나서 나도 끼어들어보았다."그야 당연하죠. 필체는 언어교육과 관련이 있고, 언어교육에는 문화가 반영되니까 문화권마다 필체가 조금씩 다르죠. 미국인이 쓰는 영어 알파벳 글씨와 동북아 사람들이 쓰는 영어글씨가 달라요. 그리고 남미계 이주민이 쓰는 영어 알파벳 글씨가 달라서 일반적으로 그냥 봐도 차이를 알 수 있어요."

내가 답을 했더니 어떻게 아느냐고 도리어 신기해했다. 생물 다양성, 문화 다양성, 언어 다양성은 서로 얽혀 있는 개념이다. 필체는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문화 인종적인 특징을 담고 있다는 말이다. 필체의 개인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문화 인종적 배경에 따라 큰 묶음으로 분류될 수 있다. "미국인이 쓰는 영어 알파벳은 통통하게 살이 쪘어요. 동아시아 사람들이 쓰는 알파벳은 상대적으로 날씬합니다. 저는 과학수사에 참여하면서 글씨체가 출신 문화권에 따라 다른 걸 보고서 놀랐습니다."

나 역시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누군가 강의실에 두고 간 책을 발견했고 책에 쓰인 글씨를 보고 아시아계 학생의 글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책은 중국 유학생의 것이었다. 영어 알파벳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쓰는 아라비아 숫자의 모양도 문화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백인계 남미사람들이 쓰는 글씨체는 같은 남미계라고 하더라도 토착 인디오 출신들이 쓰는 글씨체와 조금 다르다.

글씨는 읽고 쓰기 교육의 결과물이다. 문해교육은 언어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며, 사회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글씨에는 그 사회의 집단문화가 살포시 포개진다. 손글씨에는 개인적 특성과 함께 문화적 배경이 묻어있기 때문에 문화 포렌식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중부매일 jb@jbnews.com

<저작권자 © 중부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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