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대기자 겸 논설실장

내수전서 바라 본 울릉군 저동항/ 뉴시스

1905년은 격동의 해다. 그해 2월 일본이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칭하고 시마네현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같은 시기 동해에는 세계 최강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 순양함 돈스코이호가 나타났다. 돈스코이호는 제2태평양함대로 재편되어 남아프리카를 돌아 마다가스카르 섬을 거쳐 불라디보스톡으로 가기위해 동해를 지나던 중이었다. 하지만 무려 34,000km를 항해하면서 식량공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 돈스코이호는 일본 해군의 공격에 무너졌다. 당시 발틱함대 사령관은 레베데프 돈스코이호 함장에게 항복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하지만 함장은 끝까지 항전하다가 자침(自沈)을 선택했다. 패색이 짙어지자 배를 일본 해군에 줄 수 없다며 야심한 밤을 틈타 해군 200여명을 모두 울릉도로 상륙시킨 뒤 스스로 침몰시킨 것이다.

그로부터 95년이 지난 2000년 12월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인디펜던트의 기사는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그동안 전설로만 알려졌던 금화와 금괴를 가득 실은 돈스코이호가 한국해양연구소(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의해 울릉도부근 해저에서 발견됐다는 보도다. 당시 우리나라의 뛰어난 선박탐사 기술을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배에 실린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제 소버린 금화와 러시아 금화, 금괴 등의 가치는 150조 안팎인 것으로 평가됐다. 천문학적인 보물을 실은 보물선 스토리의 시작이다.

보물선이 발견되자 러시아와 일본이 소유권을 주장했으며 워크아웃 와중에도 탐사프로젝트에 70억 원을 투입해 재기를 노렸던 동아건설은 한때 주가가 폭등했다. 실제 일본은 1980년 9월 대마도 근해에 침몰한 발틱함대 소속 러시아 순양함 '나히모프호'에서 백금괴 16개(400만 달러 상당)를 인양하기도 했다. 당시 주일 소련대사는 인양중지 및 인양 관련 소련과의 합의 요구 및 재산 소유권을 주장했고, 일측은 국제법상 전리품이라며 국유재산임을 주장하는 등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동아건설은 돈스코이호를 인양하는데 실패했다. 이 때문에 동아건설 주가는 폭락하고 회사는 파산절차를 밟았다.

박상준 대기자 겸 논설실장

과연 150조 내외의 금괴가 순양함에 실린 것은 사실일까. 최근 돈스코이호 인양에 나선 신일광채그룹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금화와 금괴는 진짜 존재한다"고 밝혔다. 보물선 인양에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초대박이다. 하지만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일부 전문가들도 군함인 돈스코이호에 엄청난 보물이 실렸을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보급품 구입과 임금지급 때문이라면 나히모프호처럼 50억원 정도의 금괴라면 몰라도 150조는 믿기 어렵다. 다만 정말 돈스코이호를 인양한다면 수차례 영화로 제작된 '타이타닉호' 못지않은 역사문화 콘텐츠로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 숨겨진 역사를 복원할 수 있으며 배에서 인양된 유물로 울릉도가 국제적인 관광명소로 떠오를 수도 있다. 과연 112년만에 울릉도앞 보물선의 비밀스런 베일은 벗겨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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