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제354회 국회(정기회) 제5차 본회의에서 직권상정 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자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정치권에 협치(協治)가 화두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에서 협치는 가장 필요하지만 가장 찾기 어려운 덕목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개혁인사가 야권의 반발로 벽에 부딪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협치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수뇌부가 차마 입에 담긴 힘든 원색적인 비난으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는 국민의당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협치를 야합이라고 판단해 아예 선을 긋겠다면 몰라도 이런 식의 발언이 잇따른다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에 이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까지 국회 문턱을 넘기 힘들어진다. 이럴 경우 청와대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민주당도 심한 내상을 입게 된다. 정치력 부재현상이 정국불안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의 강성발언이 협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 때문에 여당의 투톱으로 문재인 정부 첫 정기국회를 진두에서 지휘해야 할 시점에 악재를 만나 오히려 입지가 위축되는 형국이다. 추 대표는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인준표결이 부결된 것에 대해 "'땡깡' 부리고, 골목 대장질 하고, 캐스팅보터나 하는 몰염치한 집단"이라면서 국민의당을 비판했다. '땡깡'은 '생떼'. '억지'라는 의미지만 일본어로는 경련과 발작을 일으키는 '간질(간질)'이라는 뜻으로 주로 말 안듣는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우 원내대표는 "적폐세력과 함께한 국민의 당"이라고 했다. 여당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이런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국민의당에 대한 민주당의 그릇된 인식을 보여준다. 내편을 들면 당연하고 반대편이면 몰염치한 집단이라고 비난한다면 다당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여건에서는 국민의당이 협조하고 싶어도 협조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당이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위해서는 추 대표 등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조건을 내걸은 것은 당연하다. 여소야대의 의석구조상 국민의당의 찬성표가 없으면 김 후보자의 국회통과는 난망(難望)이다. 민주당은 험한 말로 자충수를 둔 것이다.

협치 실종은 70% 안팎의 높은 지지율에 힘을 받은 청와대의 '코드인사'와 민주당 지도부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치개혁을 원하는 민주당이 야당의 입장을 무조건 수용하기는 힘들 것이다. 자칫하면 야합이라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협상의 예술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싸울 때 싸우더라도 끊임없이 밀고 당기며 조율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협치 대신 강공을 택한 듯한 모양새다. 김이수 헌재소장의 낙마에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다. 오죽하면 이낙연 국무총리도 문재인 정부의 가장 아쉬운 점으로 협치 실종을 꼽았다. 절박한 쪽은 야당이 아니라 청와대와 민주당이다. 지금은 국민의당 의원들의 감정에 불을 지를 때가 아니라 진정성있는 대화를 통해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는 가뜩이나 '편향적 코드인사'라는 말을 듣고 있다. 그 와중에 여당대표가 적개심에 가득 찬 언어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스스로 발목을 잡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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