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커플의 지구별 신혼여행] 27.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앞바다, 인생 최고 바다
바다 위 성곽도시 두브로브니크
아기자기한 골목집도 '마음에 쏙'
아름다운 마을 칭송 관광객 북적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모습

후후커플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동반퇴사하고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난 조현찬(32)·연혜진(28) 부부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크로아티아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국경을 넘자마자 제 몸보다 큰 배낭을 짊어진 여자 여행자가 히치하이킹을 하는 게 보였다. 같은 배낭여행자로서 히치하이커는 꼭 태워주자는 다짐을 했던 차였다. 자그마한 차 뒷자석은 캠핑장비로 이미 가득 찼지만, 겨우 자리를 내어 지친 여행자를 태웠다.

베네수엘라에서 왔다는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는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수퍼에 가도 매대가 텅텅 비어있고, 일주일간 일을해도 하루치 돈만 받고, 거리엔 폭동이 매일 일어난단다. 산드라는 심지어 쓰레기통까지 뒤져본적이 있다고 했다. 베네수엘라에 있는 가족들은 지금도 하루 한 끼 겨우 먹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한때 석유부국이었던 나라가 정부의 경제 정책 때문에 한순간 경제가 파탄나다니.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나라의 정부,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성벽 구멍으로 바라본 두브로브니크

그녀가 오직 카우치서핑과 히치하이킹만으로 유럽을 떠돈 지 벌써 1년 반이 넘는다고 했다. 유럽은 최대 3개월만 머물 수 있는 쉥겐 조약을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에, 쉥겐 국가와 비쉥겐 국가를 번갈아 3개월씩 머문단다. "내 남자친구는 쉥겐 국가인 스웨덴에서 일해. 그래서 남자친구를 만나려면 비쉥겐 국가인 크로아티아에서도 3개월 머물러야 해. 그래서 크로아티아에 왔지. 남자친구가 마침 휴가를 내서 오늘 만나기로 한거야." 하지만 그녀가 말했던 마을에 다다르자, 그녀는 남자친구와 만나기로 한 숙소 주소도 모른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난처했지만 이대로 두고가기가 안쓰러워, 마을 사람들에게 와이파이를 빌리고 지도를 보며 함께 숙소를 찾아주었다. 비록 2시간 이상 지체되긴 했지만, 강인해보이던 그녀가 남자친구 품에 안겨 우는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모처럼 착한 일을 한 것같아 마음이 뿌듯해졌다.

크로아티아. 이름도 낯설었던 이 나라가, 우리나라 여행객들의 로망이자 가장 핫한 여행지가 된 건 TV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를 통해서였다. 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로아티아를 가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정도로, TV를 통해 본 크로아티아는 정말 예뻤다. 그만큼 기대가 컸던 여행지, 크로아티아는 누구나 가슴 속에 품는 환상 속 그 곳처럼 푸르렀다.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의 바다 어느 곳을 둘러보나 햇살에 반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스플리트의 이름 모를 해변에서 처음 아드리아 해를 봤던 날이 생각난다. 어쩜, 바다 색이 이럴 수 있냐며 남편과 나는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스플리트의 바다는, 가까이 가면 내 마음까지 훤히 들여다보이지 않을까 싶을만큼 투명했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바다였다. 지금까지 아름다운 바다를 많이 봤지만, 그날 스플리트에서 봤던 바다는 가히 최고였다.

스플리트

크로아티아에서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스플리트였다. 사실 가장 예쁜 곳은 아니었다. 예쁘기로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두브로브니크가 더 예뻤다. 게다가 스플리트는 화창하다가도 비가 내리고 다시 화창해지는 걸 반복하며 날씨가 변덕을 부리던 곳이었다. 그런 스플리트가 두브로브니크보다 더 좋게 기억되는 이유가 뭘까. 그냥, 덜 북적이는 곳에서 반짝거리는 아드리아해를 바로 앞에 두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실 때 이미 모든 게 좋았다. 투명한 아드리아 해를 안주삼아 마셨던 그날을 떠올리면, 시원한 목넘김이 생생해지는 것만 같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검색해 찾아가기보다, 정처없이 걸어다니는 것을 더 좋아한다.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어느 골목을 걷다 만나는 장면들이, 갑작스러운 행운처럼 느껴진달까. 스플리트의 골목에서도 돌아다니다보면 우연치않게 만나게 되는 것들이 좋았다. 색색깔의 옷들을 널어놓은 모습부터 화분에 곱게 심어진 꽃들,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동상의 발가락까지.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는 내내 방송에 나왔던 장소를 다시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스플리트를 걸어다니면서도 자꾸만 TV에서 봤던 장면들이 보였다. 시계탑 광장을 보면서는 배우 김희애와 이미연이 스플리트 전경을 감상하던 장면이 떠올랐고, 바다를 따라 늘어진 리바거리에서는 비를 맞던 이승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부러 TV 속 장소를 찾아나서지 않았는데도, 절로 그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도 사랑했다는 작은 섬 흐바르로 향했다. 배로 두시간 여 달려 도착한 흐바르 섬은 한적하면서도 온전히 아드리아 해를 마음껏 즐길만한 곳이었다. 숙소에 짐부터 풀고 나오려는데, 아뿔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점퍼를 뒤집어쓰고 기어이 혼자 장을 보러 나갔다. 굵어지는 빗줄기만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잔뜩 젖은 생쥐꼴을 한 남편이 돼지고기와 채소가 든 비닐봉지를 들며 웃어보였다. 결국 남편은 그날 얻은 감기에 눈병까지 걸려 사흘을 꼬박 앓았다. 게다가 흐바르에선 애타는 우리 속도 모르고 하루종일 비만 내렸다. 숙소에서 내다보는 모습도 참 예뻤는데, 세찬 비바람에 창문은 열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숙소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예쁜 흐바르 섬에서 사진 한 장 못 찍고 돌아와야 했다. 아쉬웠지만 우리의 여행은 계속 이어지기에, 다음 여행지인 두브로브니크로 향했다.

크로아티아 앞바다

바다와 맞닿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두브로브니크. 이토록 완벽하게 성벽이 그대로 유지된 도시가 또 있을까. 변덕스럽게 비가 자주 내렸던 스플리트와 달리, 두브로브니크는 연중 300일이 화창하다는 도시였다. 주홍색 지붕들이 다닥다닥 모여있는 도시는 견고한 성벽에 폭 안겨있었다. 어디서 보나 엽서에 있을 법한 풍경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두브로브니크 성벽 위를 따라 걸으면 한쪽으로는 도시, 그리고 다른 한쪽으로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과연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칭송될만 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두브로브니크는 분명 가장 아름다운 도시임에 틀림없지만, 북적이는 관광객들 사이를 지나다니다보니 도시 자체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기엔 어려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우연한 행운처럼 반짝이던 순간들 앞에선 마냥 행복했다. 성벽에 난 구멍으로 들여다 보니 주홍색 지붕들이 물결처럼 펼쳐진 모습, 관광객들을 피해 들어선 골목에서 만난 좁고 아기자기한 계단이 예뻐 한참을 따라 걸어 올라갔던 기억까지. 두브로브니크 전망대에서 본 풍경보다도, 성벽에서 보았던 사소한 순간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크로아티아는 우리에게 따뜻하고 편안한 나라였다. 파리나 비엔나처럼 바쁘게 관광지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그냥 걸어다니기만 해도 마냥 좋은 나라. 유럽 사람들의 휴양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예쁜 해변이 많은 유럽에서도 단연 가장 예쁜 바다를 가진 곳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크로아티아는 모두의 로망이 되기에 충분했다. TV로 비춰진 모습, 아니 그 이상으로 아름다웠던 그 나라, 그 바다를 가슴에 품은 채 우리는 이담에 꼭 다시 오자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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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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