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좋고 땅 기름지며 볕 드는 곳…세월 다듬어 마음의 빛 담다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소나무였다. 토성에 쌓인 눈길 사이로 부풀어 오른 붉은 흙의 유혹을 뿌리치며 달아나려는 내게 손을 내민 것은 뜻밖에도 한 그루의 소나무였다. 여느 소나무와 달리 솔방울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온 몸이 상처 투성이었다. 무슨 슬픔과 아픈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소나무를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솔방울이 쏟아질 것 같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고,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다. 소나무야, 나 어쩌란 말이냐. 어찌 살란 말이냐. 소나무는 죽을때가 되면 종족번식 본능으로 솔방울을 많이 만든다던데 그간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으면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떠나려 하는지 아픔이 밀려왔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그린 '세한도'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친구처럼 나란히 서 있다. 사람하나 없어 고독하고 쓸쓸한 내음이 끼쳐오는데 가슴이 철렁할 정도다. 학자들은 귀양살이의 외로움을 표현한 당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그 그림 왼편의 "추운 겨울이 지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게 남아있음을 안다"는 글이 압권이다. 칠십 평생 벼루 열 개가 닳아 구멍이 낳고, 붓 천 자루가 몽당붓이 되었다는 그의 삶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도시를 한 바퀴 휘감고 달려온 무심천 끝자락, 미호천이 인접해 있다. 물이 맑고 깊어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땅이 기름지고 볕이 잘 드니 청주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다. 인근에서는 17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볍씨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름하여 소로리볍씨다.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삶의 이유도 알 수 있으리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역사는 항상 묵언의 수행으로 말해오지 않았던가.

정북토성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평지 정방형(正方形) 토성이다. 하늘에서 보면 네모꼴 모양인데 전체둘레가 675m, 내부 면적은 13만4천583㎡에 달한다. 이곳에서 돌화살촉과 돌칼 등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2~3세기 원삼국이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왜, 이곳이었을까. 미호천의 물길과 주변의 곡창지대라는 지리적 특성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전에는 토성 안에 여러 채의 가옥이 있었고 농경생활도 했다. 주변의 논과 밭을 오가며 살기에 편리하고 행복하지 않았을까.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금강지류인 미호천을 통해 이웃마을과 이웃 나라와 활발한 교역을 했을 것이다. 곡식을 나누었을 것이고, 문화로 풍요로웠을 것이며, 사랑과 다툼도 있지 않았을까. 언제나 옛 사람들은 지혜로웠다. 땅과 하늘과 지형을 보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판단했다. 당장의 이익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더 큰 세상을 내다보고, 더 먼 미래를 생각했다. 정북토성도 그러하다.

주변에는 정북토성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 유적과 집터가 많다. 송절동 유적, 신봉동 유적, 봉명동 유적, 송대리 유적, 송두리 유적…. 널무덤과 덧널무덤 등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집단 무덤과 주거의 흔적이 가득하다. 백제시대의 고분군과 삶의 잔상이다.

세월을 다듬어 마음의 빛을 담는다. 아,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기는 한가. 말을 탄 백제 무사의 함성소리가 들린다. 물길을 따라 저 마다의 꿈을 빚고 사랑을 하던 옛 사람들의 소소한 풍경도 끼쳐온다. 고단할 땐 이곳에서 두리번거리자. 과거로의 초대에 마음 부려놓자. 세월을 다듬어 마음의 빛을 담아보자.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글 / 변광섭(에세이스트, 청주시문화재단 콘텐츠진흥팀장)
사진 / 홍대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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