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대기자 겸 논설실장

핵잠수함 자료사진 / 뉴시스

미국 핵잠수함 알라바마호는 러시아의 핵미사일 기지 근해로 접근하던 중 러시아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후 본국으로부터 핵미사일을 먼저 발사하라는 통지문을 받는다. 하지만 최종 발사명령을 남겨두고 갑자기 통신장비가 고장난다. 함장은 직권으로 발사를 명령하지만 부함장은 국방성 명령없이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전세계를 제3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뜨리게 된다며 명령을 거부하고 함장의 지휘권을 박탈해버린다. 이 항명으로 반전과 갈등이 전개되면서 양측의 충돌이 고조된다. 1995년에 제작된 영화 제목 '크림슨 타이드'는 미 해군에서 1급 위기사태를 뜻한다. 영화는 잠수함속 급박한 비상상황에서 거대한 힘이 개인에게 주어졌을때 어떤 위기가 닥칠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핵을 장착한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은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다. 이때문에 할리우드는 벌써 20년전에 핵잠수함으로 인한 전쟁위기를 영화적 상상력을 빚어냈다.

최근 부동산 한파와 살충제 계란이 서민들의 마음을 짖누르고 있지만 '안보뉴스'는 더 위협적이다. TV를 켜고 신문을 펼치면 일촉즉발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조그만 자극에도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다. '북한 핵'이 동북아에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의 거친 입담도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뉴스를 접하기가 겁난다는 사람도 많다. 북한이 괌을 직접 겨낭하는등 미 본토에 대한 위협수위를 높이면서 미국에선 10만달러짜리 핵공격 대피시설도 출시됐다. 최고 1년까지 버틸수 있도록 오염물질 정화장치, 가스, 물 공급장치는 물론 소파와 TV까지 갖추고 있다고 한다. 북한과 미국의 말폭탄이 현실화 되는것과 별개로 '핵 전쟁'은 이미 펄펄 끓는 이슈가 됐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면서 우리나라도 자체 핵무장 주장이 나왔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최근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군사적 옵션으로 핵잠수함 도입 가능성을 거론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7일 진해해군기지를 방문해 핵잠수함 추진의지를 밝혔다. 핵잠수함은 20여년전만해도 미국과 러시아의 전유물이었다. 영화 '크림슨 타이드'의 대사가 말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남자는 미국 대통령,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미국 탄도 미사일 잠수함 함장이다" 냉전 시대 양강구도를 형성한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핵전쟁의 키를 쥐고 있는 잠수함 함장의 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 프랑스, 영국, 인도도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도 잠재 개발국이다. 이들 나라는 모두 핵무기 보유국이다. 핵무기가 없는 우리나라는 핵잠수함을 개발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정부의 의지와 기술력은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다만 한미원자력협정에서 핵연료인 농축우라늄의 군사적전용을 금지해 미국의 협조가 전제돼야 한다.

박상준 대기자 겸 논설실장

국가의 명령에 충실한 함장과 핵전쟁을 막기위해 신중히 판단하려는 부함장중 과연 누가 옳은가. 의도적으로 설정된 영화속 딜레마는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적은 북한일까. 영화속 부함장 헌터(덴젤 워싱턴)은 "핵무기가 있는 현세에는 진정한 적은 전쟁 그자체입니다"라고 말한다. 모든것이 앗아가는 핵전쟁은 승패도, 피아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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