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 클립아트코리아

고인이 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서전 '김영삼 회고록-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2000년 초쇄)에서 경주 수학여행을 소개했다. 1946년 경남 중학교 재학 시절 이었다. 당시에는 학제가 달랐던 점과 YS가 1947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던 것을 고려하면 고3 시절 일 게다.

거제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라 경주 여행이 가장 북쪽을 경험한 일이었다고 소개한 그는 수학여행 얘기를 하며 한장의 흑백사진을 자서전에 소개했다. 교복을 입은 급우 전원이 첨성대에 올라간 장면이다. 족히 40명은 넘어 보이는 교복차림 학생들이 첨성대 중간까지 올라갔다. 사진은 흡사 바닷가 바위에 홍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장면이다. "1946년 경남중학교 수학여행 중 첨성대에서…."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곁들인 YS는 한술 더 뜬다. "왼쪽 최상단이 나…."

YS가 하숙방 책상 상단 벽에 '미래의 대통령'이라고 종이에 써 붙였던 때가 이 무렵이다. 하숙방에 놀러와 황당하다 싶었던 친구가 종이를 떼어 내자 주먹다짐 직전 상황의 충돌을 한후 친해졌다는 시점이다. 사진 설명으로 보나 그의 기질을 고려하면 '첨성대 기념촬영'을 누가 주도했는지 짐작할만 하다.

경주시 인왕동 국보 31호 첨성대는 1962년 국보로 지정되기 이전에는 흔히 이런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국보 지정에 이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가치를 인식하게 됐지만, 이전에는 경주 여행의 '인증샷'처럼 여겼던 것 같다. 심지어 벽면을 오르는 것은 물론 꼭대기까지 올라가 기념 촬영을 했다는 사진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막 지나 '보릿고개' 시절이었으니 문화재에 대한 시각은 요즘과 너무 달랐던 것이다.

이후에도 '의식주'가 온전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마찬가지 였다. 충주댐 건설로 제천시 청풍면 청풍문화재단지로 옮긴 보물 제528호 한벽루(寒碧樓)가 1980년 이전 청풍면 소재지에 있을 때만해도 같은 대접을 받았다. 초여름이면 한벽루는 수확한 보리를 말리는 건물로 쓰여지기도 했다. 가을이면 다시 볏단이 누각 아래, 위는 물론 주변을 빼곡히 채우기도 했다. 호구지책(糊口之策)이 상책(上策)이던 시절이자, 문화재 밥 먹여 주냐는 말이 하나 이상할게 없던 시절이다.

한인섭 부국장겸 정치행정부장

술취한 대학생 3명이 국보 31호 첨성대에 올라가 인증샷을 찍으려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지난 4일 자정께 첨성대 옆면을 타고 오르다 시민들에 발각됐다. CCTV에 찍혀 몰상식한 장면은 그대로 노출됐다. 경찰은 이들에게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형사처벌도 그렇지만 여론의 '치도곤'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마 국민들은 "세상에 저런 한심한 일이…."라는 일치된 시각으로 대했을 것 같다. 'YS의 수학여행'에 견주지 않더라도 달라진 세상을 새삼 실감케 하는 사건 아닌가 싶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