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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집

기사승인 2017.08.17  18: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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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에세이] 강전섭

"아니, 세상에 이런 신기한 일이 있나."

창고 선반 위에 화분을 올려놓으려는 순간 희한한 것이 눈에 띈다. 화분 한가운데 일곱 개의 조그만 새알이 놓여 있다. 어떻게 이런 곳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을까. 진객이 날아들었으니 기쁜 마음이 그지없다. 인생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운이 온다더니 뜻밖의 행운이다.

지난봄 창고 앞 황매화 가지 위에 곤줄박이가 둥지를 틀었다. 세찬 비바람에 가지가 휘어지고 부러지면서 둥지가 드러났다. 위태위태한 주거 공간이 불안했던지 새는 미련 없이 집을 버리고 날아갔다. 빈 둥지만 나뭇가지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한동안 궁금하던 터에 새로운 둥지를 발견한 것이다. 사람의 눈이란 믿을 만한 게 못 되는 모양이다. 창고 선반에 놓인 물건들을 정신없이 내려놓을 때 보이지 않던 새 둥지를 발견한 것이다. 흰색 바탕에 엷은 갈색 얼룩무늬 알이 소복이 쌓여 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행여 부정 탈까 봐 얼른 눈길을 거두고 제자리에 올려놓는다.

무기력해진 심신을 털어내고자 몸을 움직인다. 시골 헛간을 본떠 지은 창고를 정리할 요량이다. 그간 잡동사니를 쌓아두어 늘 눈에 거슬렸던 곳이다. 하지만 어차피 내 손을 거쳐야 할 일이기에 더위도 피할 겸 밀어붙이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긴 시간 먼지 구덩이 속을 쓸어내고 안을 들여다보니 말끔한 게 등목 후처럼 개운하다. 가끔은 청소로 묵은 때를 벗겨내듯, 세파에 찌든 우리네 마음도 씻어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니 어찌하랴.

창고가 환하다. 비 갠 뒤에 하늘이 청명하듯이, 창고를 청소한 후 가지런히 정리해 놓으니 산뜻하니 보기가 좋다. 좌우 선반 위에는 화분을 크기대로, 정면에는 작고 앙증맞은 기물들을 올려놓는다. 벽면에는 정원 가꾸는데 필요한 농기구를 걸거나 세워 둔다. 쇠스랑, 삽, 사다리, 양손가위, 톱, 갈퀴, 싸리비, 모종삽, 호미, 낫, 전지가위, 씨앗 주머니통 등이다. 몇 걸음 뒤로 가서 창고를 바라보니 한 폭의 그림이다. 마치 부자가 된 듯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

예전 시골집 헛간을 되살리고자 만든 '농부의 집'은 마음의 위안을 주는 정겨운 곳이다. 인간이나 미물이나 둥지를 선택하는 방법은 같다. 인간이 음택과 양택을 살펴 안식처로 삼듯, 곤줄박이도 가장 안전하고 안락한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농부의 집'은 내게 유년기의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그리움의 장소지만, 새는 생명을 키우는 보금자리였으리라.

시골집은 본채 곁에 사랑채가 있었다. 세 칸으로 된 사랑채는 사랑방, 뒷간, 헛간으로 나누어졌다. 헛간은 농사일에 필요한 잡다한 물건들을 쌓아놓는 창고 역할도 하지만, 농부로서 아버님의 자부심이 서려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어릴 적 숨바꼭질하느라 헛간에 들어갔다가 경을 친 일이 있었다. 그곳은 그만큼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닌 아버님만의 특별한 공간이었다.

일 년의 농사를 짓는 모든 것이 헛간에서 나왔다가 그곳으로 들어갔다. 선반 위에는 짚으로 엮은 멍석과 여러 가지 씨앗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벽에는 호미, 낫, 삽, 괭이, 쇠스랑, 키, 체, 맞두레, 씨앗 망태, 삼태기, 망태기 등이 가지런히 걸렸다. 가래, 고무래, 도리깨, 곰방메, 극젱이 등은 벽면에 세워 두었다. 바닥에는 쟁기, 풍구, 지게, 가마니틀, 개승, 홀태, 탈곡기, 바람개비 등과 같은 농사일에 필요한 각종 농기구가 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가끔 헛간의 농기구를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던 아버님의 모습을 말이다. 세월이 흘러 내가 어른이 되고, 전원에서 생활하며 아버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농부에게 헛간이 신성한 삶의 공간이듯, 곤줄박이 새도 창고가 생명을 잉태하는 성스러운 공간임을 내게 일깨웠다. 단순히 추억의 공간으로만 생각하며 등한시했던 창고에서 날짐승의 둥지를 통해 평생 농사일로 살다 가신 아버님의 숨결을 느꼈다.

창고 안은 더운 열기로 가득하다. 이 더운 날 새끼를 품는 어미 새의 모성이 놀라울 뿐이다. 인기척에 놀라 둥지를 나갔던 곤줄박이가 알이 걱정되었는지 주변을 맴돈다. 어미의 마음을 읽고 얼른 자리를 옮긴다. 머잖아 어미 새의 보살핌으로 새끼들은 부화하여 날아오르리라.

말끔히 정리된 '농부의 집'은 평온하다. 아니 생명의 기운이 넘친다. 헛간의 농기구로 식물을 키우듯, 생명을 키우는 공간이라 여기니 흐뭇하다. 땀이 흐르는 등줄기로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흩어진 구름 사이로 낮달이 빙그레 웃고 있다.

약력
▶ 2015년 수필과 비평 신인상
▶ 사단법인 딩아돌하문예원 이사 겸 운영위원장
▶ 청주문화원 이사
▶ 충북국제협력단 친선위원회 위원장
▶ 우암수필문학회 회원
▶ 충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 청주문인협회 회원
▶ 충북수필문학회 사무국장
▶ 청주대성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

중부매일 jb@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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