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커플 지구별 신혼여행 #유럽편] 26. 이탈리아 - '물의도시' 베네치아

이탈리아 베네치아. 어느 골목을 가나 바닷물 위로 다리가 놓여져있다. 베니스의 상징인 곤돌라

후후커플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동반퇴사하고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난 조현찬(32)·연혜진(28) 부부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캠핑을 시작했다

시부모님께서 한국으로 가신 뒤, 우리는 이탈리아의 마지막 도시 베네치아(베니스)에서 첫 캠핑을 시작하기로 했다. 유럽에서 우리 둘의 여행이 처음 시작된 것이다. 유럽에는 캠핑 문화가 보편적으로 발달되어 있어, 캠핑장이 많고 캠핑장비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한국에서 캠핑은 커녕 요리도 안해본 우리가 유럽에서 캠핑이라니.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는 신혼 살림이라도 마련한 것처럼 신이 났다. 텐트를 치는 것도 버벅대고 냄비밥이 잘 될지 조마조마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재미있었다. 냄비밥에 제육볶음 하나 해 먹는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반찬은 하나 뿐인 식사지만, 소꿉장난하듯 함께 만들어서인지 훨씬 맛있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맥주 한 병을 마시는 것까지, 모든 게 여유있고 좋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어느 골목을 가나 바닷물 위로 다리가 놓여져있다. 베니스의 상징인 곤돌라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최고의 도시라는 명성답게, 가장 예쁘게 기억되는 곳이다. 지금까지 동양의 베니스나 리틀 베니스 등 베니스와 비슷하다는 여러 도시들을 가봤지만, 역시 원조는 달랐다. 물의 도시답게 어느 작은 골목을 가나 흘러 들어온 바닷물 위로 아치형 다리가 놓여져 있었고, 다리 아래로 사람들을 태운 곤돌라가 지나다녔다. 크고 작은 골목이 하도 많아 지도를 보는 것도 무의미했기에, 우리는 일부러 길을 헤매면서 한참을 걸어다니기도 했다.

피렌체는 우아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않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붐벼 잘 즐기지 못했는데, 베네치아에서는 작은 골목들이 많으니 한적한 곳으로 골라 다닐 수 있어 상대적으로 더 마음에 들었다.

베네치아만의 특징은 버스나 자동차가 다니지 않고, 자전거와 페리만 다닌다는 점이다. 익숙한 버스나 지하철이 아닌, 페리로만 다니려니 영 신기하기도 하고 경치를 감상하기에도 더 좋았다. 집집마다 작은 배를 매어둔 것이 참 인상깊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어느 골목을 가나 바닷물 위로 다리가 놓여져있다. 베니스의 상징인 곤돌라

페리를 이용해 인근의 무라노 섬과 부라노 섬도 갔다. 두 섬은 작고 아기자기한 게 참 닮았지만, 무라노 섬은 유리 공예, 부라노 섬은 레이스 공예가 발달한 섬이다. 둘 중 부라노 섬은 알록달록한 원색의 건물들이 줄지어있는 모습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어부들이 자신의 집을 잘 찾기위해 집 외벽을 원색으로 칠했다는 이야기도 참 재미있다. 우리도 가장 기대했던 곳 중 하나였지만, 아쉽게도 비가 내렸다. 속상했지만, 비를 맞으면서도 여느 맑은 날 못지않게 오빠와 기분 좋게 다녔다. "어머님, 아버님도 여기 오셨으면 참 좋아하셨을텐데." 부모님이 가시고 첫 여행지여서인지, 베네치아에서는 계속 시부모님 생각이 났다.

장기 여행이 계속되다보니 나는 여행 그 후의 삶을 걱정하기도 하고 직장이 아닌 다른 길들을 꿈꾸기도 한다. 한국에서라면 좁은 길만 생각했지만, 세상 밖에 나와서는 더 많은 길을 상상해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내 생각과 꿈을 들어주는 건 항상 오빠였다. 언제나 그렇듯 그날도 오빠 옆에서 '오빠, 우리 다시 돌아가면 무슨 일할까?', '우리 다시 가도 잘 할 수 있을까?' 하면서 불안해하기도 하고, '오빠 나도 유학가고 싶어', '나도 워킹홀리데이 가보고 싶었는데', '외국에서 잠깐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하면서 내가 하고싶은 것들을 늘어놓기도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오빠는, '혜진아, 우리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자. 너무 걱정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자! 지금 우리의 여행을 무사히 잘 마치는 것만으로도 우린 참 큰 걸 해냈다고 생각해. 그렇게 여행하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면, 여행이 끝나고 또 새로운 길이 생길 거라고 믿어.' 하며,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다시 잡아주었다. 그리고 오빠는 덧붙였다.

성 마르코 광장

"나는 여행도 많이 다니고 캐나다에서 워킹 홀리데이하면서 6개월 살아보기도 했는데, 혜진이는 어린 나이에 나한테 시집 오느라 해보고 싶은 것들 다 못한 것 알아. 나는 해 봤는데 너는 못해본 것들을 직접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미국이든 유럽이든 어디서든 니가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하게 해줄게. 캐나다에 가면 벤쿠버에서 하고싶었던 공부도 해봐."

"에이, 오빠도 같이 있는데 나 혼자 어떻게 해. 돈도 많이 들고, 나 공부하는 동안 오빠는 심심하잖아."

생각지도 못한 오빠의 배려가 고맙기도 하고, 막상 같이 있는 오빠가 걸리기도 했다.

"그런 생각하지마. 나는 어디 가서 뭘 보고 다니든 사람들을 만나든 알아서 할테니, 나 신경쓰지말고 너 하고싶은 것 해. 대신 넌 실컷 놀아. 집에 와서 공부만 하지말고, 차라리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맥주 마시며 한참 놀다 와. 집에서만 하는 공부 말고, 외국인 친구 많이 사귀며 영어로 얘기 많이 해. 그게 진짜 공부야."

베네치아 광장의 야경. 매일 해가 늦게 지는 유럽에서, 야경보기가 참 어렵다

그날 오빠와의 대화는 여행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내 꿈에 대해서도, 아니 지금까지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금껏 나는 '열심히'만 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삶의 방향성을 찾기보다, 그냥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열심히만 하면 뭐든 된다고 믿어왔다. 필리핀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도,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는 대신 방에서 영어 공부를 했던 나였다. 그런 내게 '놀아라, 그게 진짜 공부'라는 오빠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나보다 자유롭게 살아온 오빠는 몸으로 그걸 배웠고, 나는 그 중요한 걸 모르고 있었다. 캐나다에 가서 오빠 말처럼 정말 공부를 하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오빠와의 대화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지금 현재, 오늘의 여행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오빠가 내 옆에 있다는 게, 참 감사한 날이었다. / 후후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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