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방울 가득했던 담배공장, 문화창조의 숲으로 변신

새벽부터 담배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늘 높이 솟은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는 주변 마을을 휘돌며 사람들의 가슴속을 파고 든다. 트럭들은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며 거칠고 야성적인 콘크리트 건물을 빠져나온다. 공장으로 들어가는 사람,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정문 앞 종합안내소는 언제나 인산인해였고 오가는 사람들은 눈웃음을 주고받으며 찰나의 행복을 나누었다.

어린 소년은 정문 옆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누나를 기다렸다. 월급봉투를 들고 나온 누나는 소년의 손을 잡고 장터로 가서 입안이 쩍쩍 달라붙는 달고나와 구슬과 딱지를 한 움큼 사 주었다. 야근을 하고 나온 어른들은 인근의 선술집에서 해장국과 막걸리 한 잔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여인들은 골목시장에서 반찬거리를 주섬주섬 챙겼다. 공장 앞은 장돌뱅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짐을 풀어놓고 오가는 사람들과 흥정을 나눴다. 공장 주변의 상가는 온 종일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다.

사람들의 삶이 언제나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쾌쾌한 담배냄새를 맡으며 일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고되고 눅눅한 삶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불평불만 하는 사람이 없었다. 시골에서는 담배농사로 자식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었고, 공장에서는 박봉이지만 생존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고막을 울리는 기계소리와 땀으로 뒤범벅이 된 일상을 온 몸으로 품으면서도 주저앉을 수 없었던 이유다. 주변의 상가나 운송과 유통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안정된 일터였기에 고단해도 콧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곳에는 더 이상 담배냄새가 나지 않고 트럭의 엔진소리와 공장의 기계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월급날마다 안덕벌이 흥겨운 잔치마당이었던 장도 서지 않는다. 밤나무 숲의 추억도, 물방개 춤추던 우물도, 아이들의 놀이동산이었던 먹바위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발걸음과 매캐한 담배연기의 추억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담배공장의 이야기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담배공장이 애물단지가 되었다며, 공룡같은 공장 때문에 동네 이미지만 나빠졌다며 불만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식어가면서 어둠과 찬바람만 서늘한 건물과 공터를 지켜야 했다. 햇살과 구름조차 외면하니 습하고 낡은 그곳에는 비둘기똥과 먼지와 거미줄만 켜켜이 쌓여갔다. 이따금 동네 불량배들이 공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작당모의를 했다.

동네 사람들도 늙어가고 있었다. 참다못한 사람들은 한 마디씩 토해냈다. 담배공장이 마을을 망쳐놨어. 더 이상 이 동네는 희망이 없어. 먹고 살 길이 막막해. 도시의 이미지만 훼손하는 흉물일 뿐이야. 빨리 떠나던지, 아니면 공장을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거나 쇼핑타운이 들어서야 해. 담배공장은 이제 그 누구의 관심을 얻을 수 없었다. 되레 쓰레기를 투척하고 폐자재나 쌓아두는 흉물로 둔갑했다.

13만㎡의 담배공장은 벼랑 끝 기분으로 하루 하루를 견뎌야 했다. 1946년부터 연간 100억개비씩 생산하고, 17개국으로 수출하며, 사람들의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았는데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나고 애물단지가 되었으며 버림받은 생각을 하면 눈물이 쏟아졌다. 아니, 이제는 눈물조차 사치라며 언제 헐릴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운명의 그 날을 기다려야 했다.

2011년 가을. 이곳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공예축제가 열렸다. 세계의 문화전문가들은 거칠고 야성적인 공간이 예술작품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며 침을 흘렸다. 건물 자체가 국보급이라며, 군더더기 하나 없는 생얼미인이라며, 세계적인 아트팩토리라며, 남아있는 것이 행운이라며 입을 모았다. 바로 이곳에서 문화산업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들어서고 시민예술촌이 조성중이다. 더 이상 담배는 생산되지 않지만 문화예술의 꽃이 피고 문화산업의 열매가 맺고 있다. 시민들은 다시 용기를 갖게 되었고, 꿈을 빚을 수 있게 되었으며, 희망을 노래하게 되었다.

 

글 / 변광섭 에세이스트·청주시문화재단 콘텐츠진흥팀장
사진 / 청주시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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