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김동례 대소금왕고등학교 수석교사

영화 '파파로티' 한 장명 / 뉴시스

35년 전 맑은 공기 단양에서 첫 교직을 시작하였습니다. 높은 언덕에 자리한 하얀 건물의 학교에서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5학급의 여학생들과의 생활은 매일 행복한 생활이었습니다. 순수한 자연 속에서 그들의 모습은 해맑기만 하였습니다. 빛바랜 추억의 사진을 가끔씩 들춰보았습니다. 소풍 때 많은 아이들과 마냥 행복하기만 한 모습 속에서 먼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때로는 입가에 그리움이란 단어로 씁쓸하기도 합니다. 가끔씩 펼쳐보면서 '지금 이 아이들이 어디서 무얼하며 지낼까?'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곤 했습니다.

단양의 수몰로 인하여 학교의 모습은 남, 녀 공학으로 통합되고 교명도 바뀌었고, 수줍움 가득한 여학교에서 공을 차는 씩씩한 남학생들로 활기찬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3학년 학생들 담당하는 교사로서 샘솟는 열정을 다하여 지도하면서 한 해를 보내고 첫 졸업생을 배출하였습니다.

많은 세월 속에 가끔씩 떠오르는 단양에서의 첫 제자들을 그리며 몇 년 전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변화된 교정의 건물들과 운동장! 지나간 추억이 사라짐에 아쉬워 물끄러미 벤치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다 이내 발걸음 돌려 집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5월 어느 날 점심시간 중년의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선생님의 신분을 확인한 후 저녁을 함께 하자는 제의였습니다. 단양에서의 첫 제자임을 알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퇴근 후 제자들과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였습니다. 지난 날 학교생활 이야기 보따리를 꺼내며 선생님들의 흉내와 애피소드로 한바탕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그 당시 선생님의 영어수업시간 주어졌던 외적보상(스프링 노트)을 극찬하면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에 '교사로서 잘 했구나.'라는 자찬을 하면서 젊은 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 후 우리가 함께했던 단양에서 또 한 번의 모임을 추진하겠다는 의견을 듣고 설레이는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맡았던 담임반 여학생들 중심으로 만나는 것이기에 더욱 기다려졌습니다.

가뭄 끝에 이어지는 여름 장맛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단양을 향해 힘차게 달렸습니다. 제자와 차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이제 어느 덧 삶의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교사와 제자가 아닌 삶의 동반자처럼 구석구석의 인생을 말하였습니다. 제자의 삶을 듣는 동안 대견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마음속으로 찬사를 보냈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잘 다듬고, 직장에서의 원만하게 처리하는 행동이 참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한 줄기 쏟아낸 비를 뒤로하고 한적한 죽령고갯길에 잠시 멈춰 과거보러가는 옛길을 바라보며 풀 향기도 맡고 모처럼 고요한 가운데 빗소리도 깊게 호흡하며 느껴보았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소녀시절의 모습은 어느 새 중년의 원숙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가슴으로 뜨겁게 안기는 모습은 여전히 학생 같아 보였습니다. 아름다운 사인암에서 능이백숙을 먹으며 우리 모두는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갔습니다. 그 당시 여러 선생님과 다른 제자들을 떠올리며 그 동안의 행적도 다소 알게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제자들이 사회 속에서 당당하고 멋지게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로 대견하였습니다. 그들은 오늘의 자신들이 있을 수 있던 것은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양한 선생님들의 모습을 통하여 아이들은 성장하고 자신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교사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제자가 안내한 명장의 도예가 선생님을 방문하여 차도 함께 하였습니다. 맛있는 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차향과 같은 향기를 지닌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다짐도 해 보았습니다.

교사는 교단에서 끊임없이 사랑의 불을 지피고 또 지핀 불이 언젠가 소중한 불씨가 된다는 것을 가슴에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새로운 아이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펴가자고 감히 제안해봅니다. 또한 교단에서의 교사의 모습은 오늘도 내일도 학생들의 모델이 된다는 것을. 오늘도 교단에서 새로운 얼굴들을 통하여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진정한 교사의 사명을 새기며 제자들의 눈동자와 무언의 약속을 해 봅니다. 마치 아이들처럼 한껏 포즈를 취하며 우리는 다시 추억의 사진을 담으며 한바탕 웃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고향에 남아 든든히 고향을 지키며 우리들을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하게 쉬게 해 준 제자가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아름답게 단풍으로 물들 가을에 만남을 기약하며. 소중했던 제자와의 시간을 가슴에 깊게 간직해봅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