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커플의 지구별 신혼여행 #유럽편] 22. 터키 - 이스탄불, 파묵칼레
유럽느낌 물씬…동서양 문화 융합된 국가
하루 네번 알라신께 기도…이슬람 향기도
블루모스크·성 소피아 대성당·골목·공원
현지 친구와 재회·변치 않은 장소에 감동
유네스코 등재 자연온천 '파묵칼레' 장관

이스탄불 신시가지 이스티랄로 거리. 최근 테러로 터키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동남아시아 베트남에서부터 시작된 후후커플의 세계여행은 말레이시아, 네팔, 인도 등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각보다 순탄치 못한 여행은 이들을 당황키도,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더 성장시켰고 낯선 것에 대한 호의를 갖게 만들었다. 앞으로 또 어떤 에피소드들로 독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까. 동남아 여행을 마치고 새로운 땅, 유럽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여행기를 계속해서 지켜보고자 한다. 후후커플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동반퇴사하고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난 조현찬(32)·연혜진(28) 부부다./ 편집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 터키에 왔다. 스물넷, 처음으로 배낭메고 친구랑 한달 여행온 곳이었고 모든 것은 완벽했다. 꼭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와야지 다짐했던 곳에 다시 온 건, 믿기지 않을 만큼 설레는 일이었다. 오빠에게도 내 기억처럼 예쁜 터키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스탄불을 조망할 수 있는 갈라타 타워.

터키는 유럽과 느낌을 모두 가지고 있어, 동서양 문화가 고루 융합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길이 돌바닥으로 되어있어 유럽의 어느 골목을 걷는 느낌이 들다가도, 하루 네 번씩 알라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터키인들을 보면 이슬람 국가의 면모를 엿볼 수도 있다. 천년 이상 터키의 수도였던 이스탄불, 하얀 석회 온천이 있는 파묵칼레, 기이한 지형에서 열기구를 탈 수 있는 카파도키아, 지중해안 도시로 연중 날씨가 좋은 안탈리아, 기독교인들이 모여 살았다는 셀축 등 개성 가득한 도시들이 모두 터키에 있다. 내가 터키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다. 내가 사랑하는 터키를, 오빠도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싶었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구시가지로 가는 트램을 탔다. 10kg가 넘는 배낭을 앞뒤로 맨 우리가 혼잡한 트램 에서 균형잡느라 쩔쩔 매자, 한 할아버지께서 기댈 수 있는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역시 터키 사람들은 너무 착해' 하며 오빠와 터키에 막 도착한 설렘을 나누는데, 오빠가 벙찐 표정으로 '나 소매치기 당했어' 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셨던 할아버지가 오빠 바지의 호주머니 지퍼를 열고 지폐만 쏙 빼간 것이었다. 맙소사, 그것이 우리의 첫 소매치기였다. 다행히 환전을 얼마 하지 않아 한화 만원 정도의 금액이었지만, 믿었던 바지 주머니에서까지 털리다니 황당했다. 안돼, 터키 너 왜이래. 날 실망시키지 말라구! 오빠에게도 예쁜 터키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하필 처음 온 날부터 소매치기라니. 우리는 유럽이라고 절대 방심하지 말자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이스탄불에 크고 작은 모스크가 많은데, 외관에도 이슬람에서 쓰는 코란이 쓰여져 있다.

소매치기의 기억은 뒤로 하고, 그 나머지 터키의 모습은 꼭 4년 전 그때와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스물넷의 기억과 맞물렸다. 나만의 행복했던 추억 속에 오빠와 들어온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이스탄불의 골목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던 귈하네 공원, 시원하게 솟아오르는 분수대를 사이로 마주보고 있는 블루모스크와 성 소피아 대성당의 신비로움까지. 모두 그대로였다. "오빠, 저기 그림파는 가게도 그대로 있어!" "나 저기 벤치에 앉아서 멍때리는 거 좋아했는데!" 얼떨떨해하는 남편의 팔짱을 끼고, 나는 신이 나 있었다.

4년전 터키에서 만났던 Ahmet과 그의 사촌형과 저녁 약속도 잡았다. 호주에서 유학하면서 한국인 친구가 많았던 Ahmet은 한국인에게 받은 정과 사랑을 나에게 되갚고 싶다며, 여행할 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도와준 친구였다. 빵만 먹으며 끼니를 때우던 내게 모듬 케밥을 사주고,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도 버스 예약 뿐 아니라 숙소나 교통 예약 등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고마운 친구였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나다니! Ahmet은 북한 평양을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사촌형은 한류 드라마 팬인 부인 때문에 서울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유명인사들이 잔뜩 다녀간 레스토랑에서 배가 터질 만큼 식사를 대접해 주는 그들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넥타이와 귀걸이 선물을 해준 것도 모자라, 헤어지기 전 애플티와 터키식 디저트인 로쿰을 사와 건네는 그들에게 큰 사랑을 느꼈다. "한국에 꼭 다시 와. 그땐 우리가 대접해줄게" 꼭 오겠다는 그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우린 돌아설 수 있었다.

프랑스로 넘어가기 전, 5일만 머물기로 한 터키에서의 시간은 촉박했다. 파묵칼레, 카파도키아, 안탈리아 모두 데려가고 싶었지만, 시간상 파묵칼레만이라도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터키 파묵칼레에서. 자연적으로 생긴 이런 석회암 지대와 자연 온천은,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중 하나였다.

파묵칼레는 석회암 지대에 석회 성분이 들어있는 자연 온천들이 계단식으로 만들어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선정된 곳이다. 하얀 석회암 지대에 하늘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온천의 색이 대비된 모습이 아주 장관이다. 마치 요정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상상에 빠지는 곳이랄까. 4년 전 이미 여길 다녀왔지만, 회사 책상달력에도 그려진 파묵칼레의 사진을 보면서 꼭 한번 다시 오고 싶다는 상상을 했었다. 회사 책상에서 상상하던 게 이렇게 보란 듯이 이루어지다니! 내가 터키에 다시 오다니! 정말이지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의 연속인 게 분명하다.

대부분의 여행지가 그렇듯, 여기도 날이 흐리면 예쁘게 사진을 담을 수 없어 걱정이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다행히 우리가 있는 동안은 내내 화창했다. 우리는 그림 같은 곳에서 꿈을 꾸듯, 맨발로 파묵칼레 이곳 저곳 발자국을 남겼다. 차가운 석회암을 밟다가 옥빛 온천물에 발을 담그면, 따뜻한 온기가 발을 간지럽혔다. 목욕탕집 아들답게 온천을 좋아하는 오빠에게도 딱인 여행지였다. 오빠는 온천에 몸을 푹 담그고 물가에 풀어놓은 아이마냥 신이 난 모습이었다. 나는 자꾸만 하얀 파묵칼레와 오빠를 더 담고 싶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목화 성'이라는 이름답게 하이얀 파묵칼레에서 하얀 티와 청바지를 입은 우리 둘. 나만 가지고 있던 예쁜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참 좋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온다는 것은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터키에서 유명한 파묵칼레. 하얀 석회암 지대에서 나오는 온천수라,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린다.

터키에 있었던 이 짧은 모든 순간들이 예뻤다. 오빠는 터키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빠에게도 여기가 예쁜 조각 중 하나였으면 좋겠지만, 아마 오빤 나만큼 사랑하진 않았을거다. 소매치기의 충격이 컸던 탓이겠지. 아무렴 어떠냐. 우린 지금도 예쁜 조각들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내가 좋았던 추억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겐 같은 추억으로 기억될리 없다는 걸 안다. 모든 여행자들에게 예쁜 터키일리 없기에, 우리 또한 모든 곳이 예쁘게만 기억되기 어렵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 후후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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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담지 못한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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