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서울역광장 슈즈 트리 (2017. 05.16.) / 뉴시스

자치단체장 전시행정과 혈세낭비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되는 공공조형물이 있다. 충북 괴산군의 초대형 가마솥이다. 전문가의 자문이나 지역주민들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통행 식으로 조성하면서 쓸모없이 방치돼 흉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최근 '흉물이냐 예술이냐'는 논란에 휩싸였다가 열흘도 못 채우고 철거된 서울역 광장의 슈즈트리(Shoes Tree)가 이슈가 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무분별한 공공조형물이 본래의 조성 의도와 달리 혈세만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치단체장의 과욕이 빚어낸 결과다.

최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슈즈트리는 도시재생과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서울시가 서울역 광장에 헌 신발 3만 켤레로 만든 설치미술 작품이다. 작가의 재능기부로 큰돈이 들지 않았지만, 운반과 거치대 비용 등으로 1억4천만 원이 투입됐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달 20일 설치돼 9일 만에 철거됐다. 서울시는 높이 17m 수직으로 매어 늘어뜨린 신발이 멀리서 보면 폭포수가 쏟아지는 것 같다고 해명했지만 대부분 시민들은 지저분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결국 소중한 혈세만 낭비한 것이다.

하지만 수 천점에 달하는 지자체의 공공조형물 혈세낭비 사례는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만큼 많다. 괴산군 괴산읍에는 군 예산과 주민성금 5억 원을 넘게 들여 2005년 7월에 완성된 무게43.5t에 달하는 초대형 가마솥이 있다. 군민 4만 명의 밥을 한 번에 지을 수 있는 솥이라고 하지만 막상 밥을 제대로 지어본적은 없다. 축제 때 찰옥수수 1만 개를 찌는 데에 그쳤다. '세계 최대 가마솥'을 자랑하며 기네스북 등재를 신청했으나 더 큰 호주의 질그릇 때문에 기네스북 등재도 포기했다. 이 때문에 괴산군의 초대형 가마솥은 관광자원이 아니라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충북 영동군이 2010년 2억3천만 원을 들여 조성한 지름 6.40m, 너비 5.96m, 무게 7t 규모의 대형 북도 마찬가지다. 3대 악성(樂聖) 중 한사람인 난계 박연의 고향인 국악의 본고장이라는 홍보마케팅차원에서 북을 제작해 영국의 기네스 월드 레코드(GWR)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북(Largest Drum)'으로 인증 받았으나 보관시설이 없어 4년간 방치됐다가 새로 지어진 국악 체험촌의 집(고각)에 겨우 자리 잡았다.

공공조형물은 지역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관광마케팅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유무형의 커다란 자산이다. 독일 라인강변의 로렐라이언덕은 로렐라이 조각상 외에는 특별히 볼 게 없지만 매년 340만명가량이 이곳을 찾는다. 금발의 소녀 로렐라이에 얽힌 전설 때문이다. 무조건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크기에 집착하거나 예술적 가치와 스토리텔링이 없이 트레드에 연연한다면 실패작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전문가들의 심의나 지역주민들의 여론수렴 절차를 외면한 채 자치단체장의 치적을 위해 무리하게 추진하면 세금만 잡아먹은 채 방치된다. 잘 된 공공조형물은 지역의 문화·관광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관건은 전문가와 지역사회의 참여도를 높여 오래도록 주민들이 자랑할 만한 상징물로 남을 수 있도록 까다롭게 조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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