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커플의 지구별 신혼여행] 19. 인도 - 자이살메르

후후커플은
"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동반퇴사하고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난 조현찬(32)·연혜진(28) 부부다 "

인도의 블루시티 조드푸르에 이어 이번엔 골드시티라 불리는 자이살메르에 왔다. 자이살메르는 인도에서 유일하게 사막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낙타 사파리 투어가 특히 인기다. 사막이라니, 낙타라니, 아프리카에 가서야 볼 줄 알았던 낙타를 여기서 타보는 건가. 들뜬 마음으로 자이살메르에 도착하자마자 1박 2일 쿠리 사막 투어에 따라나섰다. 쿠리 사막에서 낙타에 올라타 두어 시간 가서 저녁을 먹고 사막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일정이었다.

사막 근처 작은 마을에 도착하니 수십 마리의 낙타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그 큰 눈에 무거워 보이는 속눈썹, 뭔가를 계속해서 우걱우걱 씹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몰이꾼들은 능숙하게 우리 가방을 낙타 등에, 큰 물통들을 낙타 목에 걸었다. 오빠와 내 낙타 몰이꾼은 몰이꾼 중에서도 가장 어려 보였는데, 언뜻 봐도 열 살이 조금 넘은 것 같았다. 너무 어린데 잘할 수 있을까, 우리 우려와는 달리 매우 능숙하게 낙타를 다루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드디어 낙타 등에 올라타고 나니,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낙타는 일어설 때 뒷다리부터 펴기 때문에,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도록 몸을 눕히듯이 최대한 뒤로 젖혔다. 낙타가 완전히 일어서니 3, 4미터쯤 되었을까,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겁이 많은 나는 낙타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손잡이가 손에 난 땀 때문에 미끄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20분쯤 지나니 이것도 점점 익숙해져 주변 풍경도, 앞뒤 낙타들도, 사막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몸집의 낙타는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사막의 고운 모래 위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바로 앞에 탄 오빠의 낙타 뒤꽁무니만 보면서 가다 보니, 낙타가 걸음을 멈추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게 똥을 싸는 것도 실컷 봤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막은 역시 사막이었다. 햇볕이 너무 강렬하고 뜨거워 온몸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터질 듯한 더위, 말 그대로였다. 미리 챙겨간 스카프로 히잡쓰듯 눈 빼고 온 얼굴을 감쌌다. 두 시간쯤 되었을까, 바짝 긴장한 채 낙타를 타고 오느라 엉덩이가 뻐근해질 때쯤 오늘 하룻밤을 보낼 목적지에 도착했다. 몰이꾼들은 낙타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등의 안장들과 모든 짐을 풀어주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낙타의 모습은, 흡사 거대한 공룡 같아 보였다.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해가 넘어가기 바로 직전에 사진을 찍으면 노을을 배경으로 그림자처럼 실루엣을 담을 수 있다. 발로 모래를 걷어차기도 하고, 다 같이 점프샷을 찍어보기도 하면서, 사막에서의 멋진 사진들을 남겼다. 해가 모래언덕 뒤로 꼴깍 넘어가자, 빛 한 줄기 없는 어둠이 찾아왔다. 몰이꾼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저녁 식사 준비에 바빴다. 한 사람씩 짜파티와 밥, 커리, 그리고 구운 감자를 나눠줬다. 너무 어두워 옆에 있는 사람만 겨우 알아보는데, 모닥불에 요리조리 비춰가며 눈뜬장님처럼 손으로 밥을 집어 먹었다. 간혹 모래가 어석거리며 씹혔지만, 그 어둠 속에서 가리면서 먹을 상황도 아니었다. 평소라면 기겁을 하며 뱉어냈을 건데, 다들 난생 처음 해보는 경험에 큰소리로 웃으면서 모래를, 아니 밥을 열심히 씹어 먹었다. 사막에서의 첫 끼는 꽤 맛있었다.

같이 투어했던 한국인 여행자들은 모닥불 주위로 삼삼오오 모여앉아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상담 선생님, 고등학교 선생님, 가이드북 저자, 인도 교환학생, 마케팅 전문가, 프로그래머까지 정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으니, 그 자리 자체가 흥미로웠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각자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민낯에 고무줄 치마나 바지 하나씩만 입고 슬리퍼를 신은 우리 모습은 다 비슷했다. 누가 더 잘 살고,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더 멋쟁이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에선 우리 모두, 인도에 푹 빠진 한 명의 여행자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 가득 별이 쏟아질 듯 빼곡했다. 까만 도화지에 하얀 모래를 흩뿌려놓으면 꼭 이런 밤하늘일 것이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별을 한눈에 담은 건 처음이었다. 불과 휴대폰 조명을 다 끄고 나니, 우리는 별에 둘러싸였다. 어느 것 하나 시야를 가리지 않는 사막 위에서는 별을 보려 하늘을 올려다볼 필요도 없었다. 앉아있는 내 눈높이에도 별이 있었고, 모래 위에 누우면 내 발가락 사이에도 별이 있었다. 밤이 깊었지만, 잠이 올 리 없었다. 별을 이불 삼아 밤을 보낸다는 말이 꼭 어울리는 그런 밤이었다.

투어를 마치고 와선, 자이살메르 성벽에 올랐다. 마치 사막 위에 흙으로 도시를 지어 올린 것 같았다. 과연 인도의 골드시티다운 모습이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작은 건물들이 모여 하나의 큰 골드시티처럼 보여 가장 예뻐 보였다. 도시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한 카페에, 세계여행을 하는 세 커플이 모여 앉았다. 교사 커플과 마술사 커플, 그리고 우린 회사원 커플. 여행하는 모습은 모두 달랐지만, 우리를 하나로 모으게 하는 주제는 있었다. 바로 남자와 여자. 커플 여행을 하는 만큼, 여행하면서 생기는 갈등도 피할 수 없었다. 자꾸만 부딪치고 싸움이 반복되면서,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지 막막했던 순간도 많았다. 다른 커플들은 다 잘 지내는데, 우리 커플만 유독 싸우고 힘들어하는 걸까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안 싸운다는 커플은 하나도 없었다. 서로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공감하고 위안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여자들은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조금 더 오빠를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다.

자이살메르는, 인도 최고의 여행지임에 분명했다. 별이 쏟아지던 그 밤을, 골드시티의 여유로움을, 부부 여행자들만의 고민까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더 예쁜 기억으로 남은 걸테다. 역시, 뭐든지 함께 나누는 건 언제나 옳다. / 후후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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