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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이 어우러진 백범 명상길, 솔바람길

기사승인 2017.06.02  12: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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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여행] 공주 천년 고찰 태화산 마곡사(麻谷寺)

[중부매일 이병인 기자]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자리 잡고 있는 1000년 고찰인 태화산(泰華山) 마곡사(麻谷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다.

신라시대 보철화상이 설법을 할 때 절 앞에 모인 신도들이 마치 삼밭의 삼(麻)과 같다 해서 이름 붙은 마곡사는 창건 연대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신라 선덕여왕 9년(640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곡사가 자리 잡은 태화산이 태극형을 띠고 있어 택리지, 정감록 등에서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명당으로 꼽고 있다.

또한, 사찰을 끼고 흘러가는 태화천 역시 태극의 형상으로 휘어지며 흘러가는데 태화천 북쪽은 극락세계를 상징하여 대웅보전과 대광보전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은 현세를 상징하여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영산전, 수선사, 매화당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마곡사는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에 이르는 대사찰이었으나 현재는 대웅보전(보물 제801호)을 비롯한 대광보전(大光寶殿, 보물 제802호), 영산전(보물 제800호), 사천왕문, 해탈문(解脫門) 등의 전각들이 가람을 이루고 있다.

영산전은 석가모니불과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를 모신 법당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조선시대(1651년) 각순대사가 중창했는데 조선시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자료가 되고 있으며 세조가 이 절에 들러 영산전(靈山殿)이란 사액(賜額)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영산전을 나와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태화천을 가로 지르는 극락교를 만나는데 그 다리 위에 서서 보면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보인다.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은 조선 순조 13년(1813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대광보전 위쪽으로 자리 잡은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으며 2층에 걸린 현판은 신라시대의 명필 김생이 쓴 것이라 한다.

이외에도 도량의 성보(聖寶)로는 5층 석탑(보물 제799호)과 범종(梵鐘, 지방유형문화재 제62호), 괘불 1폭, 목패, 세조가 타던 연, 청동향로(지방유형문화재 제20호)가 있으며 감지금니묘법연화경 제6권(보물 제270호)과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 제269호)이 보존되어 있다.

또한, 무성한 송림과 계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솔바람길(백범 명상길)이 유명한데 경사가 완만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등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코스(1시간, 2시간, 3시간)로 조성되어 있으며, 애국운동으로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던 백범선생이 탈옥해 마곡사에 숨어 원종이라는 법명을 받고 삭발했던 곳과 승려로 생활했던 곳도 보전되어 있다.

마곡사는 특히 春 마곡이라 일컬어지듯 봄이 되면 산사로 들어오는 꼬불꼬불한 정겨운 길은 신록으로 생기가 가득하고 봄꽃들이 만발하여 탄성이 절로 날 만큼 아름답다.

이 길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면 산사 여행의 고즈넉함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산사와 자연미를 살린 건축물, 사찰을 감싸고 흐르는 태화천 등 막임 없이 자연과 하나 되어 있는 마곡사에서 마음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마곡사에서 출가 한 白凡 金九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백범 김구(金九, 1876~1949) 선생은 공주와 인연이 깊다.

김구 선생은 15세 때 한학자 정문재에게서 한학을 배웠고 1892년 동학에 입교하여 접주가 되고 이듬해 팔봉도소접주에 임명되어 해주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군에게 쫓겨 1895년 만주로 피신하여 김이언의 의병단에 가입하였다.

김구 선생은 1986년 3월 이듬해 귀국하여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나루에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스치다 조스케(土田壞亮)가 조선인으로 변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강에 버렸다.

고향으로 돌아와 머무르고 있다 해주 감영으로 체포되었고 그 후 인천형무소로 압송되어 사형수로 복역하던 중 1898년 3월 탈옥하여 은신생활을 하다 그 해 가을 마곡사에서 출가하여 승려생활을 했다.

하은당이라 불리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법명을 원종(圓宗)이라 하였다. 마곡사에는 김구 선생이 삭발했던 바위가 있다. 이 곳 삭발바위와 마곡천을 잇는 다리를 놓아 백범교라 부른다. 그곳에서 마곡천 절경을 굽어볼 수 있어 마곡사의 명소가 됐다.

또한 김구선생이 은거생활을 하며 거닐던 마곡사 생태농장에서 군왕대로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을 산책길 백범 솔바람 명상 길로 조성했다.

백범 솔바람 명살 길은 솔잎으로 뒤덮인 오솔길로 마곡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1시간 가량 산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김구 선생이 지냈던 백범당에는 김구 선생의 진영과 1946년 마곡사를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백범당 건물 옆, 대강보전 마당에는 김구선생이 여러 동지들과 이곳을 찾아 기념식수를 한 향나무가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

김구 선생은 조선광복 후 마곡사를 떠난지 근 50년 만에 돌아와 대광보전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 去來觀世間 猶如夢中事(돌아와 세상을 보니 모든 일이 꿈만 같구나)라는 원각경에 나오는 문구를 보고 감개무량하여 이 향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무 옆에 김구선생이 쓴 '위명(僞名)이요 법명은 원종(圓宗)이다.' 라고 쓴 푯말이 선명하다.

백범당에 걸려 있는 액자에 백범선생이 평생좌우명으로 삼았던 친필 휘호가 있는데 서산대사의 선시이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蹟)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눈 덮인 들판을 밝고 갈 적에 어지러이 걸어선 아니되겠지.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을 뒷사람이 그대로 따를 테니까.


이병인 기자 byung813@jbnews.com

<저작권자 © 중부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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