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커플의 지구별 신혼여행]12. 싱가포르의 야경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야경 / 후후커플

● 후후커플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동반퇴사하고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난 조현찬(32)·연혜진(28) 부부다.

싱가폴에 있는 동안엔 계속 비가 내렸다. 싱가폴의 랜드마크 마리나베이샌즈 호텔과 머라이언상 앞에서도 우리는 흠뻑 젖은 생쥐꼴이었다. 다들 싱가폴에서 예쁜 사진들을 담아오던데, 우리는 우산도 없이 돌아다녀야하니 속상했다. 나보다 더 아쉬운건 바로 오빠였다. 15년 전 첫 해외여행으로 싱가폴에 왔던 16살 소년은, 어느덧 결혼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이 곳에 찾았다는 설렘에 가득 차 있었다. 좋았던 그 모든 것들을 내게 다시 보여줄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하필 사흘 내내 비가 내리다니! "괜찮아, 다음에 또 오면 되지"라는 내 말에도 오빠는 애궂은 하늘이 기적이라도 부려주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다행히 마리나베이샌즈 호텔과 머라이언상, 가든스베이가 다 근처에 있어 하루만에 금방 돌아볼 수 있었다. 가장 기대했던 센토사 섬도 비를 피해가느라 저녁에 잠깐 둘러보고 나온게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머라이언상도 마리나베이샌즈 호텔도 센토사 섬도 아닌, 클락키에서 해가 지는 걸 바라보며 오빠와 맥주 한병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던 순간이었다. 싱가폴에서 유명한 곳들은 워낙 SNS에서 많은 사진을 봐서인지 크게 감흥은 없었다. '아 이게 이거구나' 정도.

머라이언상 야경 / 후후커플 제공

신기한 건 싱가폴에서는 껌을 씹거나 길거리에 침을 뱉는 것 모두 벌금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저녁 8시 이후에도 술을 팔지 않아, 우리는 맥주 두 캔을 사기 위해 저녁 7시 57분에 슈퍼로 뛰어 들어가야했다.

2박 3일간의 짧은 일정. 싱가폴에서의 우리 여행은 한마디로 '사람'이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싱가폴로 넘어오자마자 지구 반대편에서 동남아로 여행온 아르헨티나 친구 커플을 만났다. 몇년 전 오빠가 남미여행을 하다 만난 친구들을 여기서 보다니. 일정이 엇갈려 20분밖에 못 봤지만 우린 아르헨티나에서 이들을 다시 만나기로 했다. 아직 남미를 가려면 멀었지만, 그곳에 가면 우릴 기다리는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남미 사람들은 인사할 때 서로의 볼을 맞대면서 "쪽" 하고 소리를 내는데, 나는 이런 인사법이 처음이라 내 볼에 친구 볼을 닿일 때 무척 당황했다. '뭐, 남미 친구가 있어야 이렇게 인사를 해보지. 나중에 남미가면 당황하지 않고 더 잘 인사해줘야지."

저녁에는 싱가폴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오빠 친구 우정언니와 내 친구 지혜를 만났다. 오랜만인데도 얼마 전에 만난 것처럼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보니 사람을 향한 여행이 역시나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곳을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것 또한 여행이라는 새로운 지론을 만들어간다.

머라이언상 앞에서 / 후후커플 제공

"괜찮아. 1년 뒤에도 잘할 수 있어." 용기내어 떠나온 여행이었는데, 막상 해외에서도 직장을 잡고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벌써부터 조바심이 났다. '내년 취업을 위해 당장 뭐라도 준비해야하는건가. 내가 너무 속편하게 있는건가.'

볼거리 많은 싱가폴이지만, 비가 내린 덕분에 생각하는 시간이 배로 늘었다. 그렇게 한없이 생각에 잠기다 다다른 결론은 그건 그들의 길이지 내 길이 아니라는 것. 내 길은 지금 이 순간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것. 그러니 겁내지 말자. 지금 나의 생각 한 줄이, 행동 하나가 곧 나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나 스스로가 인지한다면, 그뿐이다.

"그런 걱정은 한국오기 한달 전에 해도 충분해. 지금 우리는 우리의 여행에 집중하면 돼. 지금은 실컷 놀고 많이 느끼고 가는게, 우리 꿈에도 미래에도 더 가치있는 거야." 언제나 나의 든든한 지원군인 남편의 말에도 큰 용기를 얻었다. 그의 한마디가 얼마나 내게 큰 힘을 실어주는지 알까. 앞으로 남은 여행기간에도 나는 몇번이고 다시 두려워하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사서 할 수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싱가폴에서 나눴던 우리의 대화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털고 일어날 것이다.


페이스북 hoohoocouple
블로그 yhjyhj90.blog.me

# 후후커플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이야기 (보너스 사진)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