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아돌프 외젠 디스데리 'Die Sangerin Emmy La Grua'. 1860경

지난 연재에서 필자는 혹자의 목소리를 빌려 잔더를 '증명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진작가'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1980년대 증명사진을 다시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진작가가 등장한다. 그가 바로 토마스 루프(Thomas Ruff)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잔더는 '증명사진'이라기보다 '명함판(Carte de Visite)' 초상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진작가인 반면, 루프는 범죄 용의자의 신원확인 초상인 베르티옹 카드판(Carte de Bertillon) 증명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진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벤야민은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명함판 사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사진술이 시장을 점령한 것은 명함판 사진이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 명함판 사진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은 특이하게도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 백만장자가 앙드레 아돌프 외젠 디스데리이다. 혹자는 그의 '명함판' 사진으로 인해 사진이 대중화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1854년 디스데리의 '명함판' 사진은 특허를 받는다. 그는 스튜디오를 개업하여 여러 개의 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원판에 가로 5.69㎝, 세로 8.44㎝ 크기의 여러 장의 사진을 만들었다. 따라서 디스데리의 명함판 사진의 크기가 오늘날 명함판 크기(5×7cm)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명함판 사진은 얼굴중심이 아닌 전신상을 촬영했기 때문이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디스데리의 '오페라 가수 에이미 라 그루와'(1860경)는 가수의 포즈들을 촬영한 것이다. 그것은 가수의 포즈가 각기 다른 이미지들을 한 장의 음화에 인화되어 있다. 따라서 그 인화지를 절단하면 8장의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주로 지하철역에 설치되어 있는 즉석 증명사진 기계를 통해 찍은 증명사진과 닮았다. 디스데리의 '오페라 가수'를 찍은 8장의 사진들 사이에 약간의 차이들이 있다. 처음 두 장의 사진은 모델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포즈이고, 나머지는 서있는 포즈이다. 서있는 포즈 사진들 중에 2장의 사진에서 모델은 왼손을 얼굴에 가져간 포즈다. 그리고 서있는 포즈 사진들 중에 2장의 사진은 바닥에 양탄자가 깔려있다.

물론 그 8장의 사진들에는 한결같이 주름 커튼과 탁자가 놓여져 있다. 하지만 그곳이 마치 집안의 거실처럼 연출한 스튜디오임을 우리는 담방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커튼과 탁자는 단지 거실처럼 연출하기 위한 소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그 점에 관해서 벤야민은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초상사진의 배경 장식에 있는 기둥 받침, 난간, 타원형 탁자는 사람들이 오랜 노출 시간 때문에 모델들에게 움직이지 않은 채 있을 수 있도록 기댈 곳을 줘야만 했던 사정을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

필자는 잔더의 인물사진을 '증명사진'이라기보다 '명함판' 초상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진작가로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잔더는 디스데리의 '명함판' 사진기에 포즈를 취한 모델들을 '가상의 공간(스튜디오)'에서 해방시켜 삶의 현장으로 자리바꿈시켜 촬영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잔더는 명함판 초상사진의 '화장'을 지워버렸다고 말이다. 혹자는 디스데리의 '오페라 가수 에이미 라 그루와'를 촬영한 1860년경 명함판 사진들을 수집하여 앨범화 하는 일명 '앨범사진'이 유행했다고 진술한다. 벤야민은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앨범사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사진앨범들은 집안의 서늘한 곳, 응접실의 선반이나 작은 탁자 위에 곧잘 놓여 있었다. 보기 흉한 쇠 장식을 한 가죽 겉장에 금테두리를 한 손가락 두께의 앨범 낱장들 위에는 미련스러울 정도로 주름이 잡히거나 꽉 동여맨 옷을 입은 인물들 (중략) 때로는 똑바로 때로는 비스듬한 자세로 깨끗이 닦아놓은 기둥에 기대어 서있는 말쑥한 모습의 수병의 모습이 붙어있다."

류병학 사진작가

디스데리의 '오페라 가수' 역시 미련스러울 정도로 주름이 잡히거나 꽉 동여맨 옷을 입고 있다. 가상의 공간에서 '화장'하여 찍은 앨범사진은 사진의 화장이 지워지지 않기 위해, 즉 사진의 변색을 막기 위해 집안의 서늘한 곳, 즉 에이미의 삶의 공간인 응접실의 선반이나 작은 탁자 위에 놓여졌을 것이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는 당시 앨범사진은 중산층 이상의 집안에서나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따라서 벤야민의 진술은 그의 집안이 중상층 이상의 집안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당시 명함판 사진의 유행은 하층민의 집안도 포함된 것이 아닌 단지 중산층 이상의 계층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가? /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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