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커플의 지구별 신혼여행] 8. 동양의 숨은 진주, 아직 신비로운 나라 미얀마에 가다 ④

인레의 전통방식으로 물고기를 잡는 어부_통이 넓은 바지 한쪽에 노를 끼운채로 다리로 노를 젓는다. 깔때기 모양의 통발이나 그물, 작대로 물고기를 잡는 것이 특징

처음 인레 호수로 들어서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틀간의 껄로 트레킹을 마친 우리를 태운 작은 보트는 길고 좁은 물길을 지나 바다로 향했다. 아니, 바다라고 착각할 만큼 너른 호수였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파란 호수가 두 눈 가득 들어찼다. 양팔을 아무리 뻗어도 호수가 품에 들어오지 않았다. 끼룩거리는 갈매기떼들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과일과 채소를 가득 실은 보트가 우리 옆을 지난다. 그 고요한 호수가 살랑살랑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을 만드는 동안, 우리는 지난 이틀간의 트레킹을 가만가만 돌이켜보았다. 우리에게 인레 호수가 그렇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던 건, 지난 이틀간 흘린 땀과 한 걸음 한 걸음 모두 추억하고 싶은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비행기 타고 바로 인레를 왔더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것들. 그렇게 우리는 과정의 소중함을 마음에 새겨본다.

인레 호수는 30개 이상의 미얀마 소수 부족이 삶의 터전을 꾸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호수가 너무 커서 배로 두 시간은 가야 냥쉐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는데, 이때 미얀마 사람들이 호수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엿보는 것도 큰 볼거리다. 대나무로 뼈대를 만든 수상가옥들 수십 개가 호수 위에 떠 있는 건 기본이고, 얕은 수심으로 가면 토마토와 감자, 고추가 자라는 밭까지 둥둥 떠 있다. 호수 위의 밭이라니! Floating garden이라 불리는 이 밭에서 나는 건 모두 수초를 거름으로 한 친환경 채소다. 인레의 어부도 범상치 않다. 통이 넓은 한쪽 바지에 노를 끼운 채 다리로 노를 젓고, 양손으론 깔때기 모양의 통발을 이용해 고기를 잡는다. 이는 미얀마의 많은 엽서 사진에도 등장할 만큼 인레 호수를 대표하는 모습이다. 아직도 미얀마 전통방식으로 호수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있는 힘껏 손뼉을 치고 싶다.

저녁마다 우리는 숙소 테라스에 앉아 홀린 듯 석양을 감상했다. 바간을 다녀온 이후로 일출과 일몰에 더 애정이 깊어진 우리는, 특히 해가 꼴깍 넘어가기 직전의 매직아워를 가장 좋아한다. 마치 온 세상이 마법에 걸려버린 것 같은 시간.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고, 머리에서 누군가 감성모드로 스위치를 딸각 눌러버린 것 같은 순간. 인레에서 난 그런 석양을 보고 난 뒤면 펜을 잡았다. 뭐라도 끄적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일주일을 그렇게 보냈다. 아침이면 바나나와 샨 누들을 먹고, 한창 더운 낮엔 발코니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일기를 썼다. 그러다 해가 지면 물끄러미 바라보다 남편과 맥주 한 잔을 마셨다. 반복되는 일상이었음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건, 매일매일 생각에 빠지고 혼자만 있는 고요한 시간을 즐겼기 때문이다. 둘이서 하는 여행은 확실히 더 행복하고 즐겁지만, 그 많은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기엔 혼자만의 시간도 분명 필요하다. 우리는 인레에서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데이트하듯 동네를 휘젓고 다니기도 했다. 자전거로 한 시간을 달려 비밀의 화원처럼 꾸며진 와이너리에도 가보고, 장터 한 바퀴를 다 돌아 바나나 한 송이를 사 오기도 하면서.

한번은 보트 투어를 하다가 우연히 작은 마을을 발견했다. 직물 공방을 둘러보다 뒷문으로 잠시 빠져나왔는데, 그때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양옆에 아기자기한 집들이 마주 보고 있었다. 마당엔 꽃과 나무들이 가득했고 마을은 평화로웠다. 마침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마주쳤다. 두 분은 길에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나누셨다. 등이 굽은 할머니 뒤에 서 있던 우리도 서로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우리도 이담에 이렇게 살자. 옆집 사람 안부도 물으면서, 사람 냄새 나는 곳에서, 따뜻하게" 도시보다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에 살고 싶다. 우리 어릴 적 기억처럼 이웃을 초대해 음식도 나누어 먹고, 기쁘거나 슬픈 일도 함께 나누면서.

집 없이 떠나온 신혼여행인 만큼, 우리는 이다음에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지도 자주 이야기했다. 남편은 '인레' 같은 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린 트레킹의 여독이 풀린 지 한참이 되었는데도 일주일이나 인레에 머물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또 미얀마에 온다면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인레에 다시 오고 싶다. 왠지 이곳은 시간이 지나도 고향처럼 제 모습을 지키고 있을 것만 같아서. / 후후커플

# 담지 못한 사진들

호수 위에선 수경재배된 채소와 과일, 생선 등을 사고 파는 수상시장도 열린다. / 후후커플 제공
인레호수의 수상가옥_대나무로 터를 잡아 집이 물위에 떠있다. / 후후커플 제공
인레호수에서 / 후후커플 제공
인레호수 풍경 / 후후커플 제공
인레에서 담은 우리 모습 / 후후커플 제공
인레에 사는 빠다웅족_목에 링을 끼우고 다닌다 / 후후커플 제공
둥근 눈사람처럼 보이지만, 저안엔 작은 불상이 들어있다. 미얀마 사람들이 불심으로 금붙이를 붙이다보니, 작은 불상이 큰 눈사람처럼 불었다. 인레호수에선 부처로 모시는 불상 / 후후커플 제공
양 볼에 다나카(미얀마식 선크림)를 바른 빠오족 아기 / 후후커플 제공

● 후후커플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동반퇴사하고
1년 간 세계여행을 떠난 조현찬(32)·연혜진(28)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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