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이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정경유착'하면 또오르는 인물, 故 성완종 전경남기업 회장의 자서전 '새벽 빛'에는 그의 비즈니스 철학이 등장한다. "먼저 주고 나중에 받되 '줄 때는 겸손하게 받을 때는 당당하게' 이것이 내 기브 앤드 테이크의 원칙이다" 초등학교 졸업식에도 못간 소년이 외삼촌이 쥐어준 10원짜리 지폐 몇장을 들고 충남 서산에서 무작정 상경해 30여년만에 11개 계열사에 2조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처세의 노하우는 '기브 앤드 테이크'에 담겨 있다. 하지만 성공스토리의 결말이 '비극적'으로 끝날지 그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정치엔 돈이 들어간다. 선거는 말할 것도 없다. 정치의 고비용구조를 개선하기위해 2004년 오세훈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이 발효됐지만 외려 불법정치자금 유혹을 키웠다. 하지만 '통치'에도 검은돈은 흘러간다.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이 권좌에서 내려온 뒤 수의(囚衣)를 입은 것은 권력을 무기로 대기업으로 부터 막대한 뇌물을 걷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은 일해재단을 설립해 대기업으로부터 598억원을 강제로 거뒀다. 비자금은 9천억원이나 조성했다. 금고에 거금이 쌓인 만큼 주변사람들에게 준 촌지의 단위도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무소불위 권력은 협찬금이라는 명목으로 대기업에 돈을 뜯어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대북사업을 한다며 6천억원을 걷었으며 이명박 전대통령도 동반성장기금으로 7184억원을 각출받았다. 역대 대통령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경영권 승계, 총수사면, 검찰수사라는 아킬레스건을 쥐고 출연금을 빼앗다시피 했다.

최순실 게이트 특검이 수사에 고삐를 쥐면서 재벌총수들이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들것이다.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이다. 고질적이고 후진적인 정경유착의 민낯이 새삼 드러났다. 이들 대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수 십년간 쌓아 올린 회사의 평판과 이미지가 단번에 추락하고 경영권에 대한 해외투자자의 불신까지 받게 됐다.

대한민국은 외세의 지배를 받던 전 세계 약소국가중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 문턱까지 진입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압축성장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을 비롯 역대정권의 지원과 기업인들의 진취적인 노력이 뒷받침됐다. 재벌기업이 국가경제에 기여한 공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권력과 돈의 유착은 결국 재벌의 비대화(肥大化)를 가져오고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재벌회장들이 줄줄이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하고 뇌물용의자로 전락한 것은 권력과 재벌의 공생관계가 경제의 불평등 구조와 양극화 심화, 확대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작년 11월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재벌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국민 3명 중 2명은 재벌 중심 경제체재가 개인의 생활과 한국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기업이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이유에 대해선 정권의 강요(25.9%)도 있었지만 기업과 총수의 이익(22.5%) 때문이라고 본 국민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국민 68%는 경영 전면에 나선 재벌 3세들이 글로벌 기업을 이끌만한 경영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이 최근 글로벌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은 신기술개발과 경영선진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보다는 개발독재시대의 논리에서 탈피하지 못한 채 '권력밀착형 경영'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구속이후 삼성 수뇌부는 국민들의 삼성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유난히 준법·투명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경유착의 고리가 쉽게 끊어질지 의문이다. 이같은 전례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은 지난해 밀워드 브라운이 선정한 세계브랜드가치 'TOP 100'에서 48위를 랭크된 글로벌기업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기업문화는 2류라는 것을 보여줬다.

133년의 역사를 가진 GE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이 아닌 GE법'을 따른다'는 말이 있다. 전 세계 100여 개 GE 사업장 어디에서든지 30여 만 명의 임직원들은 '준법·윤리경영'이라는 똑같은 원칙하에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빈 롯데회장은 "높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갖춘 기업만이 100년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100년이상된 기업은 다섯손가락으로도 꼽을 수 없을 만큼 적다. 권력에 기생하는 기업도 문제지만 검찰과 국세청을 앞세워 기업을 괴롭히는 권력은 더 심각하다. 권력의 도덕성에 기대하지 말고 제도적으로 틀어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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