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과학의 하인 vs 우리 시대의 영예

찰스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55, Portrait by Nadar

1857년 오스카 G. 레일런드의 '인생의 갈림길'이 영국 왕실에 소장되고 난 2년 후인 1859년 프랑스에서 사진협회는 예술부(Ministry of Fine Arts)에 소속된다. 그것을 계기로 샹젤리제궁에서 매년 개최되는 살롱전에 사진협회전의 개최가 인가된다.

물론 지난 연재에서 중얼거렸듯이 살롱전에 사진도 포함시켰지만, 사진은 당시 본전시장이 아닌 별도의 공간에서 따로 전시되었다.

당시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살롱전에 입성한 사진에 대해 "만약 사진술이 일말의 기능으로 인해 예술에 추가 사항으로서 채택된다면, 예술을 밀어내게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예술이나 사진 모두가 부패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는 사진이 '본연의 의무'로 되돌아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사진은 "예술과 과학의 하인으로서, 마치 문예를 창조하거나 대신할 수는 없는 인쇄나 속기와도 같이 단순한 일만 하는 겸손한 하인으로 머물러야만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사진은 여행가의 앨범을 호사롭게 하거나, 그 기억에서 사라져버릴 정확함을 그의 눈앞에 재현시키는 일이나 맡으라고 권하는 편이 낮다. 사진으로는 자연과학자들의 도서관을 장식하라고 하고, 현미경으로나 볼 생물들이나 확대하라고 하자. 또 천문학자의 가설에 확증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성실하라고 하자. 다시 말하자면, 절대적으로 사실의 더할 나위 없는 정확성이 요구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서나 서기처럼 되면 좋을 것이다."

앙투안 비르츠(Antoine Wiertz) Self portrait. Oil on Canvas. 1860

보들레르에게 사진은 '예술과 과학의 하인'일뿐이다. 따라서 그는 사진이 '예술과 과학의 하인'으로서 본연의 의무를 이행하면 그만큼 우리에게 약(藥)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만약 물질이 아닌 정신과 상상의 세계를 침해하도록, 그리고 인간 영혼에 어딘가 보탬이 됨으로써만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영역을 침해하도록 사진을 내버려 둔다면, 그때는 사진이야말로 우리에게 그만큼 해로운 독(毒)이 될 것이다!"라고 그는 경고한다.

만약 사진이 예술이 된다면, 예술이나 사진 모두가 부패하게 될 것이라고 보들레르는 예언한다. 하지만 그의 예언은 빗나갔다. 보들레르의 '예술과 과학의 하인'으로서의 사진 진술보다 4년 전인 1855년 벨기에 화가인 앙투안 비르츠(Antoine Wiertz)는 사진을 '우리시대의 영예'라면서 사진의 미래를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류병학 작가

"몇 년 전 우리시대의 영예라고 할 만한 기계가 태어났다. 이 기계는 날이면 날마다 우리의 사유를 놀라게 하고 우리의 눈을 두렵게 한다. 한 세기가 지나기 전에 이 기계는 회화의 화필, 팔레트, 물감, 능숙함, 경험, 끈기, 민첩성, 장식, 광택제, 모델, 완성도, 정수(精髓)가 될 것이다. … 다게르타입이 예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 다게르타입이라는 이 거대한 아이가 성장한다면, 일단 그의 예술과 강점이 모두 펼쳐진다면, 천재의 정신이 갑자기 그 목덜미를 쥐고서 외칠 것이다. '이리 와! 너는 이제 내 것이다! 우리는 함께 일하게 될 것이야!'"

앙투안 비르츠의 사진에 대한 예언은 적중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진과 회화의 관계는 보들레르가 주장했던 주인·하인의 관계가 아닌 서로 나란히 예술계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날 사진과 회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런데 사진과 회화가 함께 일하게 될 수 있는 것이 새로운 내용이나 새로운 형식 때문일까? 혹 기술의 혁신 때문이 아닐까? /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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