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의메아리]

을화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관련이 없습니다. / 뉴시스

'단골'은 조그만 슈퍼마켓이나 옷가게, 식당을 자주 찾은 손님과 상점주인과의 관계를 말한다. 중소기업, 대기업까지 상품이나 용역을 매개로 고정적 거래가 형성됐다면 통상 단골이라 칭한다. 단골로 거래하면 손님은 낯선 곳을 찾는 곳보다 신뢰감을 얻을 수 있다. 상점 주인은 안정적 거래선을 확보한다. 장사나 사업에서는 단골이 성패를 좌지우지 하기도 한다.

단골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무속에서 유래됐다면 생소해 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최길성 전 계명대 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 무속의 이해(1994년 刊)'에서 '무당이 일정한 집(가정)들이나 촌락·국가(왕가)와 직업상 특약관계를 맺는 것이 단골이다'고 했다. 그는 불교 신자 조직을 뜻하는 단월(檀越)에서 유래한 말이 단골(丹骨) 등으로 와전된 것이라는 설도 곁들였다. 단군(檀君)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지방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무당이 굿을 하는 공간 또는 단골무당을 '당골'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에서 '당골'이 '단골'의 어원이라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구글 위키 백과사전 역시 '단골은 원래 단골무당을 지칭하는 단어였다'고 풀이해 일부학자의 견해만은 아니다. 어쨌든 요즘에는 상업적 관계로만 인식되는 단어가 종교에서 기원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무당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3차 촛불집회가 종료된 13일 새벽 서울 광화문 주변 곳곳에서 내자동으로 행진해 온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가운데 한 참가자가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을 패러디한 피켓을 들고 있다. / 뉴시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내년 4월 퇴진·6월 대선'을 당론으로 정할 모양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당, 정의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위임' 담화 발표 이후 탄핵과 하야 일정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의 동참 여부가 불투명한 데다 대선 일정을 놓고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일 국회에서 일정을 논의했으나, 결국 합의는 불발됐다.

자동적으로 탄핵안 1일 발의, 2일 처리는 무산됐다. 정국이 이 모양이 된 것은 알다시피 박 대통령과 최태민·최순실의 '40년 단골'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최씨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통해 '하명'까지 했다는 사실이 담겼다는 '녹음파일'이 또 한차례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법무부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국민들은 '갑·을 관계'조차 헛갈릴 지경이 됐다.

야3당 원내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회동을 하고 있다. 이날 야3당은 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이날 발의해 오는 9일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 뉴시스

무속에서 단골(마을주민)들은 단골무당에게 쌀, 보리와 같은 곡물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경제적 지원을 통해 생활을 보장했다. 대신 무당은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캐어' 했다. 신앙적, 종교적 보장에다 때로는 의료행위까지 했다. 농경사회나 요즘이나 단골은 삭막한 상업적 거래에 '인간미'를 불어 넣었다. 그러나 대통령 직무가 자연인과의 관계에서나 있었을 법한 '단골관계'가 되다보니 '탄핵'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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