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대학생인 딸이 4학년 1학기를 마치더니 돌연 휴학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친 게 지난 여름이었다.

고교시절에는 입시경쟁에 찌들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점 관리, 스펙 쌓기, 인턴 활동 등으로 진이 다 빠져버린 듯했다.

우리 부부는 고민 끝에 치열하게 살아온 딸에게 휴학이라는 선물을 주기로 했다. 휴학이 선물이고 배려인 것은 휴학 기간 동안에도 비싼 월세를 내는 원룸을 그대로 유지시켜 주기로 했고, 평소처럼 용돈도 계속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휴학 후 딸은 아껴 쓰며 저축한 용돈과 인턴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둔 돈으로 일본, 스페인 등을 여행했고 남미 여행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딸은 휴학을 한 학기 더 해야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휴학을 한 학기 더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구하거나 배려해주면 좋겠다는 간청이 아니고 이미 결정했으므로 그리 알라는 통보를 해온 것이다. 휴학을 하는 동안 자신은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며 알차게 보냈고 앞으로도 유익하게 보낼 것이므로 재 휴학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도 당당하게 했다.

평소 아내의 자식교육법은 큰 무리가 없는 한 무한 격려와 지지를 보내고 응원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그런데 딸의 재 휴학 건에는 아내의 질책이 가차 없이 쏟아졌다. '배려를 권리로 착각'하는 행태에 대한 호된 꾸지람이었다.

배려는 한 사람의 인격이고 품성이다.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주고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의 표출이다. 배려는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간섭이나 참견과 달리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다.

내 손해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너를 돕겠다는 따뜻한 희생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배려는 배려 받는 사람이 배려하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들여다 봐주고 고마워할 때 더욱 빛난다.

살다보면 받게 되는 누군가의 배려를 자신이 당연히 누려도 되는 권리로 인식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인식의 오류는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못된 심보처럼 배려를 베푼 사람에 대한 모욕이다.

배려 받음에 익숙한 나머지 누군가의 배려가 당연한 권리가 되고 더 많은 배려를 해주지 않음을 비난하는 지경이 되면 호의를 베푼 사람은 배려의 마음을 거두어들이게 된다. 이런일을 당하면 누가 또다시 배려하고 싶겠는가. 배려가 당연한 권리가 되어 요구나 강요로 전락되는 순간 관계 맺기에 치명적인 독(毒)으로 작용한다.

배려를 받고 싶은 마음은 덕을 보겠다는 마음이다. 상대방의 배려에 덕 보려는 마음이 담기면 배려의 가치는 희석되고 관계는 틀어진다.

성철 스님은 "아내는 남편에게 덕 보고자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덕 보겠다는 이 마음이 살다가 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 30%주고 70%를 덕 보자고 하고, 남편은 자기가 한 30%주고 70% 덕 보자고 하니, 둘이 같이 살면서 70%를 받으려고 하는데 실제로는 30%밖에 서로 못 받으니까 다투게 되지요."라고 말한다.

상대방이 내게 배려해주기만을 바랄 때 삶의 갈등은 초래된다. 누군가의 배려를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는 현상은 배려의 위기다.

부모가 용돈과 월세를 추가로 지불하는 경제적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휴학이라는 여가시간을 배려해 주었는데 이를 자신의 권리로 아는 딸의 태도에 심각한 위기를 느낀 아내는 딸에게 극약처방을 내렸다. 딸이 죄송하다며 재 휴학 통보를 바로 접게 만든 아내의 특효약은 "방 빼!"였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