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증평 '연병호 항일역사공원'·'연제근 상사 추모공원' 가다

연병호 선생 기념관 인근에 세워진 건축물.

[중부매일 한기현 기자] 증평군이 독립운동과 호국영웅의 정신적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전국에서 울릉군 다음으로 면적이 적은 증평군은 곡산 연씨의 세거지로 유명하다.지역을 대표하는 성씨인 연씨는 현재 도안면을 중심으로 800여 가구, 2천 여명이 살고 있다.

황해북도 곡산이 본향인 도안 연씨의 시조는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충장공 계령이며, 조선 개국 공신으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서 종군한 연사종이 실질적인 시조로 추앙받고 있다.

곡산 연씨가 증평군 도안면에 세거를 이룬 배경은 조선 중기 연안도호부사와 행주진관병마첨절제사를 겸임한 연정렬의 아들인 사직공 연정(1486~1549)이 기유사화로 부친이 화를 당하자 형인 연인건과 함께 모친 상산 김씨의 친청인 음성군 원남면 조촌리로 내려온 뒤 안동 김씨와 결혼하면서 처가인 도안면으로 이주한게 계기가 됐다.이후 후손들이 혼인과 분가, 이주를 통해 집성촌을 형성하면서 증평을 대표하는 사족가문으로 성장했다.

연병호 선생 생가.

세거지인 도안면에는 중시조인 곡산부원군 연사종(조선 개국원정공신)의 묘와 황희 정승이 지은 사종의 신도비, 북한에 있는 조상 5명의 신위비를 모신 사단 등이 있다.

최근에는 증평 출신 독립유공자 중에서 도안면 석곡리에서 태어난 애국지사 연병환·연병호 형제와 6·25전쟁 당시 형산강 도하작전의 영웅인 연제근 상사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연병환·병호 형제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처럼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증평군이 자랑하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연병환 선생은 2014년 11월에 중국 상하이 정안사 영국인 묘지에서 88년만에 국내로 유해가 봉환된 독립운동가로 2008년 건국훈장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연병호 선생 항일 기념관

연병환 선생은 일제시대 가족의 독립운동을 이끈 기둥이었다. 그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된 동생 연병호 선생을 중국으로 불러 독립운동에 투신토록 지원했다.

친딸인 연미당(건국훈장 애국·장1990)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했고 사위 엄항섭 선생은 임시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외손녀 엄기선도 독립운동 공로로 1993년 건국훈장에 추서되는 등 연병환·병호 가문은 3대에 걸쳐 5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독립운동 가문이다.

동생 연병호(1894~1963) 선생은 3·1운동 직후 비밀항일운동 단체인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을 결성하면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후에 청년외교단은 국내 정보 수집과 독립자금 모금 등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독자적인 청년 운동 주체로 부상했다.

그는 1919년 여성 비밀결사조직인 대한이국부인회와 군자금 모금 운동을 전개하다 일경에 붙잡혀 대구형무소에서 3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출옥 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일원화된 독립운동 추진을 위해 시사책진회를 조직했다.1929년에는 안창호·이동녕 등과 한국국민당을 조직하고 1934년 2월에는 한국혁명당 대표로서 독립전선의 통일을 위해 두 단체를 통합한 신한독립당을 결성했다.

이후 임시의정원 충청도 의원에 선출돼 활동하다가 1937년 상하이에서 일경에 붙잡혀 국내로 압송됐으며, '적색운동의 거두'라는 혐의로 8년의 옥고를 치르고 1944년 출옥하는 등 30여 년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45년 8·15 해방 후에는 제헌국회와 2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1963년 1월 26일 심장마비로 서거했다. 정부는 연병호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연제근 이등상사는 3사단 22연대 1대대 소속으로 형산강 도하작전에서 목숨을 바쳐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호국영웅이다. 1950년 9월 17일, 포항 탈환을 위해 형산강 도하를 결정한 연 상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새벽에 수중 돌진을 감행했으나 이를 눈치챈 적군의 기관총 사격으로 어깨에 총상을 입었지만 세 명의 전우와 함께 끝까지 돌격, 수류탄을 투척해 적의 기관총 진지를 폭파하고 산화했다.

연 상사와 분대원의 산화는 포항 지구를 수복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으며, 포항시는 6·25 전쟁 50주년을 맞아 해도군립공원에 연 상사의 흉상을 건립했다.

정부는 연 상사의 공적을 기려 2계급 특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1950)과 화랑무공훈장(1951), 무공포장(1956)을 추서하고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증평군은 2015년과 2016년 연병환·연병호 선생의 독립 정신과 연 상사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도안면 석곡리 연병호 선생 생가 옆과 도안초등학교 옆에 연병호 항일역사공원과 연제근 상사 추모공원을 조성했다.

국비 15억원과 군비 26억 등 총 사업비 45억원을 들여 지난 10월 31일 준공된 연병호 항일역사공원은 3만여㎡ 터에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을 형상화한 추모광장과 겨레의 꽃 무궁화 정원, 연병호 항일기념관, 편의시설 등이 들어섰다.

연 상사 추모공원은 지난해 5월 사업비 25억원을 들여 연 상사 동상과 금수강산 조형물, 잔디광장, 파고라 등으로 조성됐다.

연병호 항일역사공원과 연제근 상사의 추모공원은 나라사랑 정신과 지역 주민의 자긍심 고취, 호국 의지를 되새기는 체험 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한기현 / 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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