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을 기만해 허명을 취함

배득렬 교수

완연한 가을이다. 가끔 도보로 출근을 하면서 짙은 초록으로 무장한 가로수에서 雄姿(웅자)한 장군의 모습을 본다. 발걸음을 천천히, 숨을 깊게 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가 걸어온 시간만큼 연구실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살다보면 이따금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다. 얼마 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驚天動地(경천동지)의 사건이 벌어졌다. 오랫동안 세계 대중음악에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던 한 음유시인이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가 노벨상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세계 뉴스를 장식했다. 허나 정작 당사자는 지금도 계속 콘서트를 하고 있고, 이번 수상에 대해 一言半句(일언반구)도 없다. 마치 주려면 주고, 말면 말고. 무덤덤 그 자체였다. 아마 그가 평생을 추구했던 자신의 음악세계와 잘 맞는 행동이다. 그에게 노벨 문학상은 분명 큰 영광일 것이다. 허나 그 영광에 열광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고대 현자의 그림자가 짙게 느껴진다.

그는 이제 엄청난 명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명성이 자신의 모든 것을 대신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의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그에게 준 명성과 무관하게 그의 담담하고 고즈넉한 그의 목소리에 심취하게 될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세상에서 준 명성이라는 게 자칫 사람들로 하여금 본질보다 겉모습에 미혹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荀子(순자)』 「不苟(불구)」편에 한 대목이 떠올라 소개하고자 한다.

戰國時代(전국시대)의 思想家(사상가) 荀子(순자)가 세상을 속여 명성을 얻는 행위에 대하여 두 가지의 예를 들어 비판하였다. 春秋時代(춘추시대)의 衛國(위국) 大夫(대부) 史魚(사어)가 衛靈公(위령공)에게 간언했다가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염을 하지 말고 이를 衛靈公에게 가져가 遽伯玉(거백옥)을 중용하고, 彌子瑕(미자하)를 파면하라고 간언하도록 시켰다.

戰國時代(전국시대) 齊國(제국)의 田仲(전중)은 높은 지위에 있던 형의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관직에 나가려고도 하지 않고 오로지 농사만 지으며 많은 도사들과 교류하였다. 하여 사람들이 그를 마치 도인처럼 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荀子는 史魚와 田仲 모두는 기만적인 수단으로 '혼란한 시기에 虛名(허명)을 도둑질한 (盜名於暗世者也)'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欺世盜名(기세도명)'은 이 고사에서 나왔다.

荀子는 괴팍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했던 史魚, 隱人(은인)의 명성을 얻으려 했던 田仲 모두를 虛名을 도둑질한 사람이라 혹독하게 비판했다. 자연스러움! 지금 누리는 명성이 그저 한 순간 스쳐가는 바람이라는 사실.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에서 느낀 단상이다. /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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