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윤여군 국장대우겸 보은·옥천·영동 주재

윤여군 기자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 송나라의 양공이라는 사람이 강을 막 건너온 초나라 군대가 전열을 정비하는 틈을 타 공격해야 한다는 한 장군의 조언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무시했다. 하지만 초나라 군대는 강을 무사히 건넌 뒤 재무장을 하고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췄고 전투에서 결국 송나라는 크게 패했다. 대의명분을 내세워 불필요한 동정을 베풀다가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흔히 쓰이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고사이다.

이는 현실을 돌아보지 못하고 이상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양공이 한 사람의 무사로서 일대일 대결 도중에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졌다면 사람들은 그를 훌륭한 무사로 평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서 적군에게 아량을 베풀다가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패배했다면 그는 수 많은 부하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국가를 위기에 몰아넣은 패전장수가 될 뿐이다.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양공과 같은 인물이 있어서는 안된다. 지난 2일 김제 농협을 방문한 문재인 전 대표는 현장에서 쌀이 남아 돈다는 말을 듣고 북한에 강력한 제재를 하고 있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20년전 햇볕정책이 오히려 핵무기라는 그늘을 만들어 우리를 위협하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분별없이 따르던 양공이 문득 떠오른다.

통계청 대북지원현황에 따르면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1998년부터 현재까지 식량차관과 민간지원을 포함한 대북 지원금이 약 3조원에 달한다. 이중 김대중·노무현 정부때만 지원된 금액이 약 2조 7천억원이다. 국정원이 지난 5차 핵실험에 대해 국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핵실험 비용이 우리 돈 55억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수년내 북한이 50~100여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 것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햇볕정책을 추진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월드컵을 관람하던 2002년 당시에는 연평해전이라는 심각한 도발행위가 있었고 2006년 참여정부 시절에는 1차 핵실험이 있었다.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라고 말한 양공의 말을 무색하게 한 일련의 사건이었다. 핵 실험으로 UN제재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속에 불거진 UN대북결의안 채택 과정에 대한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정치인들은 명확한 국가위기 관리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인도적 대북지원을 주장한 정치 지도자가 대북인권결의안을 놓고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부분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이다. 뚜렷한 원칙과 정치철학으로 국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면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유성룡 선생이 임진왜란 실패를 뼈저리게 반성하며 남긴 징비록에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두 정치세력이 당파싸움에만 열중하다가 일본의 침략을 알면서도 명나라에 알리지 않고 선조에게는 일본이 침략의도가 없다고 보고하는 등 목전에 둔 전쟁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했던 대목이 기록되어 있다. 국정을 운영하는 관료들이 무엇이 국익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잘못된 신념을 고수하거나 타국과의 관계를 지나치게 의식한다면 막대한 국익의 손실을 가져온다.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매커니즘이지만 이해타산만 맞는다면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 국가와 국가 사이의 매커니즘이다. 관료이든 정치 지도자이든 국익을 위해 국가간의 매커니즘을 정확히 인식하고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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