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광태 농협 안성교육원 교수

김광태 농협 안성교육원 교수

피로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나없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화를 내거나, 그 분노로 말미암아 타인을 향해 치유될 수 없는 악담을 퍼붓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하지만 화(火)는 화(禍)를 부르기 마련이다. 화를 낼수록 심신의 상처는 깊어진다. 만성적인 화는 면역 체계 기능을 저하시켜 질병에 쉽게 노출되도록 한다.

특히 암세포를 죽이는 것으로 알려진 혈액 속의 NK세포의 기능을 억제해 암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린다. 표현하지 않아도 속으로 적개심을 품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의 하나인 아드레날린이 혈압을 치솟게 하여 심장마비나 심장 질환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전문지 '월간 암'에 따르면 한 번 화를 내면 8만 4천 개의 세포가 죽는다고 한다. 이 죽은 세포의 빈 공간에 콜라겐이라는 물질이 계속 들어가면 간이나 심장, 머리의 세포가 굳어지고, 그 결과 세포와 세포 사이에 장벽이 생겨 정보 교류를 방해하게 되면서 기억력이 감퇴되고 노화가 촉진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분노는 총구가 자신을 향해 있는 총과 같다. 그래서 분노의 방아쇠가 당겨지면 자기 영혼의 화약고가 터져버린다. 결국 분노는 자신을 쏘는 일이다.

동양학의 오랜 화두는 다름 아닌 '마음 경영'이다. 그래서 '천하를 평정하기 전에 마음을 먼저 평정하라'고 가르친다.

명심보감에 이르기를 정심응물(定心應物), 마음을 안정시키고 모든 만사에 대응하라고 했다. 분노가 일 때는 먼저 마음을 안정시킬 일이다.

화가 날 때 마음대로 하면 뒤에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 마땅히 참고 이를 차분히 가라앉혀야 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분노 표출에 그치지 않고, 그 분노의 감정에 편승해 타인을 향해 씻을 수 없는 막말을 쏟아낸다. 옛 부터 이르길,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이언상인자 이여도부(以言傷人者 利如刀斧) 말로 남을 다치게 함은 예리하기가 칼이나 도끼와 같다고 했다. 때문에 과언무환(寡言無患) 다언필패(多言必敗)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고, 말이 많으면 필패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니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고 신중히 가려함이 온당하다.

연암 박지원은 '사소전(士小典)'에서 독특한 말하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귀가 먹어 큰 소리로 말하는 귀머거리를 '소곤대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장님이라 하는 대신 '남의 흠을 보지 않는 이', 혀가 굳고 목소리가 막혀 말 못하는 사람을 벙어리라 하지 않고 '남 비평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또 등이 굽은 곱사등이는 '아첨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평했다. 같은 말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

팍팍하고 스트레스 넘쳐나는 세상살이에 쌓인 분노가 많아서인 오가는 말이 앙칼지고 섬뜩하다. 온유하고 후덕한 맛이 없다. 격한 감정을 여과 없이 실어 분을 푸는 것이 잠깐은 통쾌할지 모른다. 하지만 함부로 내뱉은 말은 결국 긴 근심의 출발이 되고, 상대방의 가슴속에 아주 오랜 시간 화살처럼 꽂혀 평생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길 뿐이다.

"화가 치밀어 오르거든 마음속으로 열을 세라. 열까지 세어도 화가 가라앉지 않으면 백까지 세라"는 토마스 제퍼슨의 충고와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란에서 보전 한다"는 성경의 잠언을 기억하자. 그리하여 슬기롭게 분노를 자제하고 말을 조심하여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신중히 헤아려 말할 일이다. 분할 때는 말을 줄이고 감정은 가라앉히자. 화가 풀리면 인생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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