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 윤여군 국장대우겸 영동·옥천주재

윤여군 국장대우겸 영동·옥천주재

"정부, 육조와 각 관사 그리고 각도의 감사와 수령으로 부터 민가의 빈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可不)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 세종실록 12년 3월 5일, 조선시대 성군(聖君)인 세종대왕이 새로운 세금제도인 '공법'을 도입하기 앞서 내린 지침이다. 전화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는 조선시대에 백성의 의사를 묻는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여론조사 결과 찬성이 57%가 나왔지만 세종은 의외로 반대가 많다며 보완을 지시했다. 여론조사 후에는 부분적인 시행과 함께 세종이 직접 현장답사도 나섰다. 이렇게 묻고 보완하며 새로운 세금제도를 도입하는데 까지 1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처럼 철저한 절차로 백성들의 조세부담 경감을 가져 왔고 조선시대 전 기간동안 가장 많은 국고를 유지했다.

하지만 600년 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정치는 조선시대에 미치지 못하는 듯해 씁쓸하다. 올부터 정부는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과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좋은 취지의 제도가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추진돼 국민들에게 혼란과 반발을 사고 있다.

김영란법은 부정부패에 민감한 국민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법이다. 하지만 애매모호한 조항들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사실상 전 국민이 이 법의 저촉을 받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모두 포괄하는 세부적인 조항들이 너무 미흡했고 그 파급효과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

'김영란법 가이드'가 서점에서 팔릴만큼 명확하지 않은 법 조항 때문에 국민들은 혼란 속에서 몸을 사릴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관련당사자들은 사교적인 약속 조차 잡을 수 없고 식당은 불황에 당황하고 있다. 온 국민들이 동의하고 지지할 수 있는 좋은 취지의 법이 정부의 조급한 시행으로 혼란만 가중시킨 셈이 되고 말았다.

성과연봉제 역시 조급한 추진으로 반발을 사고 있다. 정부가 지난 1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성과연봉제 역시 '권고안'이 아닌 '지시'의 형태로 추진되면서 노조의 파업사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성과연봉제에 대한 핵심 쟁점은 공정한 성과측정이 가능한지 여부와 성과연봉제가 저성과자를 가려내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노조의 연이은 파업의 배경은 성과연봉제의 취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성과연봉제의 폐해를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성과연봉제 반대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기득권 지키기에 다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기득권에 기대, 놀고 먹는 근로자들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공공기관의 효율성을 제고하려 했다면 성과연봉제의 부작용에 대해 노조를 설득했어야 했다.

김영란법과 성과연봉제가 사회혁신으로 받아 들여지지만 졸속적인 법률 추진으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국민들은 친분있는 사람들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며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공공서비스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김영란법에 대한 개정과 보완을 위한 입법발의가 되고 있으나 개정되기 전에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고 성과연봉제는 저성과자로 낙인 찍어 버릴 것이다. 국민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이다. 미완성의 법으로 국민을 죄인으로 만들고 성과가 낮다고 해서 내쫓는다면 고용문제는 심각해지고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세금제도를 도입하는데 17년 동안 백성들의 의사를 묻고 제도를 보완했던 세종대왕의 정치적 리더십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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