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우리사회에서 자동차는 여전히 신분의 상징이다.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한집에도 자동차를 여러대 소유해 지하주차장이 웬만한 운동장보다도 넓은 아파트단지도 주차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브랜드와 모델은 차 소유주의 사회적인 지위를 드러내는 지표다.

이 때문에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브랜드 소유에 대한 욕망과 경제적인 현실 때문에 고민한다. 이틈을 파고 든 것이 자동차 뇌물이다. 물론 그 뇌물은 권력을 가진 자의 전유물이다. 2천년대 중반 중국의 경제학자 장젠화가 펴낸 '우리가 몰랐던 또하나의 중국'에는 기업인들이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는 사례가 자세히 서술돼 있다.

한때 목돈이 든 통장을 주는 사례가 흔했다. 뇌물을 받는 사람의 명의로 은행에 저금한 뒤 통장을 건네는 것이다. 하지만 통장뇌물은 통장발급때 신분증명서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없어지고 자동차를 선물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뇌물은 주는 기업인 명의로 등록한 뒤 적발되면 '빌렸다'고 오리발을 내밀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뇌물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것은 지난 2011년 발생한 벤츠여검사 사건이다. 현직여검사가 변호사로 부터 사건청탁을 대가로 명품브랜드의 대명사인 벤츠와 샤넬백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시작됐다. 이 때문에 특임검사팀까지 꾸려질 만큼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지난 2007년부터 부적절한 관계가 이어진 변호사와 여검사는 2008년 2월부터 매달 리스비용이 475만원인 벤츠를 비롯해 법인카드, 명품백 등을 주고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특검팀은 이들을 모두 구속기소했지만 여검사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벤츠 선물을 사랑의 징표로 본 것이다. 김영란법이 대가성 입증 없이도 뇌물수수로 처벌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된 배경이 됐다.

벤츠여검사 사건이후에도 고급차는 늘 권력형 비리사건의 조연(助演)으로 등장했다. 오는 9월 김영란법 시행이 가져올 파장에도 불구하고 법조인의 고급차 뇌물수수는 여전하다. 126억원에 달하는 넥슨주식을 공짜로 매입해 스폰서검사장 논란을 일으키며 현직검사장으로는 사상 처음 구속된 진경준씨는 넥슨이 리스한 제네시스 차량을 13개월간 무상으로 타고 다녔다. 또 해당차량 인수대금까지 김정주 대표로 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도면 친구사이가 아니라 갑을 관계다.

최근엔 인천지법 김모 부장판사가 지난 2014년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소유의 외제차 레인지로버를 시세중고가보다 싸게 사들이고 매입대금을 다시 돌려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뇌물사건과 사안은 다르지만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본인과 아내 소유의 ㈜정강 명의로 리스한 시가 2억원대의 마세라티콰트로포로테와 포르쉐, 레인지로버를 입주민 사용차량으로 등록한 것으로 확인돼 배임혐의 의혹을 받고 있다.

수입차가 흔한 세상이 됐고 젊은 판검사중엔 고급차를 몰고 다니는 사례가 늘었다. 하지만 법원·검찰청 주차장에서 고급 수입차가 보인다면 대체로 차 주인은 '피의자' 아니면 공익근무요원이라고 한다. 검사장과 부장판사라도 고급차를 몰고 출근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뇌물로 받았거나 집안에 모셔둔 명품차를 몰면서 그들은 어떤 기분을 느낄지 궁금하다. /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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