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록 호남고속철도 분기역 오송유치 추진위원장을 만나다

'충북 소외' 소식에 1989년 민간사회단체 중심 도민 궐기
"3톤 트럭에 폭탄실어 폭파" 협박까지…무모했지만 절박
노태우 대통령 방문 재검토끝 승인 "155만 도민의 승리"


오는 11월1일 경부고속철도 오송분기역이 개통된다. 오송역의 개통으로 오송의료과학산업단지, 첨단의료복합단지, 오송바이오밸리등 오송이 국내 바이오산업의 요람으로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오송역 조성과정은 쉽지않았다.1989년 호남고속철도 오송분기역 유치추진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오송역 유치과정은 애환과 눈물로 점철됐다는 말이 나올만큼 드라마틱했다.

특히 당시 행정기관의 무관심속에 오송분기역 유치운동이 범도민운동으로 승화되면서 '충북인의 힘'을 과시하는 계기가 됐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이 나올만큼 온갖 역경을 딛고 경부고속철도 노선변경과 오송분기역 유치를 이끌어낸 이상록(83) 호남고속철도분기역 오송유치추진위원장은 당시 상황이 눈에 선한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교육자출신의 이 위원장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90년대 지역현안문제에 앞장서왔다. 오송분기역 유치위원장뿐만 아니라 경북과 큰 갈등을 빚었던 문장대 용화온천개발저지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용화온천개발을 무력화시켰으며 1990년에는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을 맡아 제71회 전국체전에서 충북 종합 3위 달성을 지휘했다.

팔순의 고령에도 지난 12일 전국체전이 열리는 경남 진주를 방문해 충북선수단을 격려하고 돌아온 이위원장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오송역유치의 비화를 밝혔다.



▶오송역 유치에 관여하게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호남고속철도 건설에 따른 기점역을 경부고속전철 천안역에서 공주를 경유해 논산으로 신설하는 68㎞의 노선안이 정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충북을 소외시킨 것이다. 이에따라 1989년 우리지역 학자, 민간사회단체에서 준비모임을 갖고 위원장으로 남궁박사와 권태성씨를 뽑았으며 나역시 위원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이듬해 1월30일 정식으로 추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연세가 많은 두분은 2선으로 물러나고 내가 청주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회의에서 위원장으로 뽑히면서 본격적으로 앞장서게 됐다."

▶당시 보도를 보면 오송역 유치에 우여곡절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에서 충북을 배제한채 조치원 서쪽 4-5㎞쯤에 위치한 금남으로 돌아가는 안을 주장했다. 추진위에서 건교부에 수차례 항의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이때문에 나와 박종원(전 한국병원이사장·작고)부위원장이 오송분기역으로 하지 않으면 부강-신탄진과 부강-내판간 협곡에 3톤트럭으로 폭탄을 실어 폭파시키겠다며 공공시설물이 파괴되지 않도록 재고하라고 서면으로 요구했다. 감옥에 갈 각오로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지만 당시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 벼랑끝 전략이 통할 수 있었나요.

"당시 노태우대통령이 지역정서가 험하다는 보고를 받고 91년 9월 충북을 방문했으며 이동호 지사와 임인택 건교부장관을 청남대로 부른뒤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또 추진위도 기술적으로도 2.5㎞만 늘리면 오송분기역으로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에따라 1991년 임인택장관이 오송분기역을 승인했다."

▶오송역 조성과정도 만만치않은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오송분기역 유치가 마무리됐으나 이번엔 언제 지어줄것인가가 관건이 됐다. 정부에선 청주권 인구가 100만명이 넘어야 착공일정을 잡겠다는 것이다. 당시 청주인구가 40만도 채안된 상황에서 오송역 착공이 요원해질 수 있었다. 이때문에 오송역 조기착공을 위해 다시 투쟁에 나서 청주·청원은 물론 진천과 조치원 등 배후지까지 포함하면 100만명이 넘는다는 논리로 설득해 정원식 당시 국무총리의 지시로 오송역 건설을 승인받았다."

▶추진위를 해산하기전 철도청을 상대로 오송분기역에 필요한 요구사항을 전달하기도 했지요?

"추진위를 해산하면서 충북개발회를 발족했다. 이때 철도청에 다섯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첫째 오송역 유치 기념관 조성 할 것 둘째 기념탑 조성할 것, 셋째 고속관광버스 정류장을 만들것. 넷째 택시승강장 만들것, 다섯째는 충북선까지 연계될 수 있도록 12선을 14선으로 확장할 것등을 요구해 모두 관철시켰다."

▶벌써 21년이 흘렀습니다. 감회가 새롭겠습니다.

"충북도민의 힘으로 만든 경부고속철도 오송분기역은 충북발전의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도에서는 협조하기는 커녕 청와대로부터 혼났다며 제발 나서지 말라며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도민들이 힘을 모아 싸워서 오송분기역 유치를 관철시켰기 때문에 155만 도민의 숙원사업이 현실화 된 것이다." / 박상준



■ 오송역 유치운동 추진일지

▶1989년 9월 4일 정부, 경부 고속전철 서울∼대전∼부산 기본노선 확정(청주역 배제)

▶1989년 9월 27일 충북시민회 고속전철 유치 성명서 발표 및 기자회견

▶1989년 10월 2일 정종택의원 국회 교통체신분과위원회에 전철통과안 제시

▶1989년 11월 충북시민회 고속전철 유치 재촉구

▶1989년 11월 20일 충북지역개발회 서한 발송

▶1990년 1월 22일 충북시민회 회원 7명 철도청 방문

▶1990년 1월 30일 경부고속전철역 충북권 유치추진위원회 결성대회

▶1990년 2월 2일 추진위 전도민 서명운동 개시

▶1990년 2월 15일 범도민 궐기대회 개최(4천여명 참석)

▶1990년 2월 16일 추진위 교통부장관 방문, 대선 공약사항 이행 촉구

▶1990년 3월 2일 범도민 2차 궐기대회 개최

▶1990년 3월 24일 충북지역개발회 고속전철역 충북권 유치를 위한 좌담회 개최

▶1990년 4월 2일 노태우 대통령 경부고속철도 노선 충북 통과방안 검토 지시

▶1990년 4월 13일 청주대 총대의원회 고속전철역 충북유치 1만 학우 결의대회

▶1990년 4월 22일 추진위 고속전철 청주 본선 유치 촉구(교통부 지선연결 의혹제기)

▶1991년 6월 4일 고속전철 유치 타당성 세미나

▶1991년 6월 25일 정부, 경부고속전철 노선 발표(청주 지선으로 확정)

▶1991년 6월 26일 경부고속전철 신청주역 건설에 관한 토론회(중부매일·MBC 주최)

▶1991년 7월 25일 청주시의회 경부고속전철 청주경유 건의문 채택

▶1991년 7월 29일 고속전철 본선 유치 위한 범도민 투쟁위원회 결성

▶1991년 7월 30일 추진위 본선 유치 강경 투쟁 성명서 발표

▶1991년 8월 5일 추진위 본선역유치추진보고회 개최

▶1991년 9월 10일 정부, 경부고속전철 본선 충북 통과 발표

▶1992년 9월 30일 경부고속전철 본선역 충북권 유치 추진백서 발간

▶2003년 11월 14일 건교부, 오송 경부고속철도 중간역 추가설치 확정

▶2008년 6월 25일 경부고속철도 오송역 분기역 기공식

▶2010년 11월 1일 경부고속철도 오송역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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